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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고려대 의대 가정의학과 윤도경 교수가 쓴 시론 '청와대발(發) 스팸메일을 받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새 몇 달 사이에 교수들에게 청와대에서 보내는 스팸 메일이 부쩍 늘고 있다. 자신들의 생각을 스팸 메일을 통해서라도 일반 국민들에게 주입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다른 스팸 메일도 그렇지만 청와대에서 오는 스팸 메일의 제목도 상당히 자극적이다. 급기야는 “교육 양극화-게임의 법칙”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으로 청와대발 스팸 메일이 도착했다.
내용인즉 서울 강남구 인문고 고3 학생수가 7922명인데 2005년 서울대 합격자가 201명이어서 1000명당 25.4명꼴로 들어가고, 서울 마포구는 고3 학생수가 2158명인데 서울대 합격자가 6명으로 1000명당 2.8명꼴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강남 학생이 강북 학생보다 9배 많이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청와대는 또 친절하게 2004년 서울대 신입생 부모의 직업을 분석하여 ‘경영, 관리직’ 18.7%, ‘전문직’ 18.5%, ‘교사’ 7.0%, ‘사무직’ 23.2%, ‘판매, 서비스업’ 18.1%, ‘숙련기술직’ 7.2%, ‘소규모 농축산업, 비숙련노동, 무직’ 5%라고 전했다. 직업으로 미뤄볼 때 중간층 이상이 약 93%라는 분석이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가정환경에 따라 어떤 아이는 30m 앞에서 출발하여 70m 달리면 되고, 어떤 아이는 100m를 다 달려야만 한다며 교육 양극화가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자 이러한 사회는 비정한 사회라고 결론지었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데 과연 그럴까? 정부가 진짜로 그렇게 믿고 30m 앞에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을 뒤로 30m 보내려는 것은 아닐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청와대 분석은 과학적으로 오류가 있다. 먼저 비교 대상을 잘못 잡았다.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만이 유독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에서 명문대 진학률이 높으면 문제일 것이다.
“강남학생은 30m앞 출발” 비전은 없고 편가르기만…
하지만 세계 어디에도 특정 지역이나 또는 부모의 직업과 상관없이 명문대 진학률이 전국적으로 똑같은 나라는 없다. 그러한 점을 감안하지 않고 특정 지역의 진학률이 높으니 문제라는 인식은 그 특정 지역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니란 걸 외면한 것이다. 청와대의 주장은 제주도에 좋은 말이 많아 문제이니, 전국 각지로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또한, 단면적 결과로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특정 지역에 단순히 살았기 때문에 명문대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더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명문대에 들어갔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규칙을 위반하고 30m 앞에서 달린 것이 아니라, 더 빨리 뛰었기 때문에 앞섰다고 인식하는 것이 옳다. 따라서 더 좋은 교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의 학생들이 30m 앞에서 뛰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강북과 지방 학생들에게 더 빨리 뛸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하는 것이다.
현 정부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헷갈리고 있는 듯하다. 어디 지역에서나 비슷하게 명문학교를 입학하고, 명문대를 입학하는 학생부모의 직업도 비슷하게 분포시키려는 결과의 평등은 이루어질 수도 없다. 이는 대안 없는 갈등 부추기기일 뿐이다.
교수들은 잘하는 사람을 더욱 잘하게 격려하고, 덜 잘하면 토닥거려서 이끌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고 믿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민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교육 비전을 제시했으면 한다. 이런 유의 스팸메일은 이제 그만 받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