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에 안병준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야구팀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최강 미국팀에 이겼고, 일본팀도 두 번이나 격파해 온 국민이 환호하고 있다. 이 쾌거를 이룬 힘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이기겠다는 확고한 목적과 이를 달성하는 전략을 수립한 감독의 지도력, 이를 따른 선수들의 정신력이 이룬 팀워크일 것이다. 이 결과 한국야구팀은 이제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과시했고,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격상시켰다. 이러한 업적이 한국 경제와 외교에서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미국인들은 한국 선수들을 향해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처럼 그들을 놀라게 한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 나라를 위해 승리하겠다는 공동 목적에 감독진과 선수들이 굳게 결속했고, 그들이 그것을 관철시키는 데 혼연일체가 되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한 결과가 아닐까. 이러한 힘은 군사력으로 타국을 강압하는 '경식 국력(hard power)'과 달리 타국으로 하여금 스스로 한국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연식 국력(soft power)'의 한 발현이다. 필자는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축구팀이 4강에 진입했을 때도 이와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번에 한국야구팀이 초강대국 미국과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의 선수들과 대적해 이러한 힘을 과시한 것이다. 

    기어코 승리하겠다는 목적이 뚜렷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감독진은 탁월한 전략과 리더십을 구사했다. 또 선수들은 이런 전략과 리더십을 따라 똘똘 뭉쳤고 결국 멋진 팀워크를 실천해 냈다.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김재박 코치가 보여준 것은 자율의 리더십이었다. 감독진은 선수들의 능력을 파악해 믿고 맡겼으며, 최고의 선수를 선발해 적기 적소에 배치했다. 한 번 부진했다 해서 문책하거나 빼지 않았다. 그런 선수에게도 다시 기회를 줬으며, 선수들은 다음 경기에서 이런 신뢰를 보여 준 감독진에 보답했다. 특히 김인식 감독은 불편한 몸으로 몸소 선수들을 지휘했으니 그의 희생정신과 강인한 의지가 돋보인다.

    선수들도 열과 성을 다해 각자의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상대방 타자의 안타를 봉쇄하게끔 투수를 적절하게 배치한 용병술, 자기 몸을 던지면서 끝까지 공을 잡고야 마는 선수의 투혼, 거리낌없이 홈런을 날리는 이승엽.최희섭 선수의 자신감, 모두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협조하면서 뛰는 모습은 실로 모범이 아닐 수 없었다. 

    대회가 시작될 때만 해도 한국팀은 조역쯤으로 취급됐다. 그러나 한국팀은 2차전까지 6경기를 치르면서 단 한 번의 수비 실책도 하지 않았고, 필요한 순간마다 홈런과 안타를 쳐냈다.

    몸을 아끼는 선수도 없었다. 팀에 대한 헌신과 승리를 향한 집념,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 등이 조화를 이뤄 꿈을 현실로 만들어낸 것이다.

    구성원이 바뀐 게 아니다. 팀워크가 실력의 부족분을 메우고 남았다. 그 결과 미국민은 물론 세계의 야구팬에게 한국팀은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다수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 등 국제무대에서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공정한 경기규칙을 준수하면서 세계수준의 실적을 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국가경쟁력과 이미지를 크게 제고시켰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들에게 갈채를 보냈고, 자긍심을 만끽하고 있다. 세계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의 능력은 우리가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만큼 성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드림팀'을 국가 관리에서는 실현할 수 없을까. 온 국민이 원하는 국가 발전 목표를 완수하는 데 관계 당국은 가장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고 이를 이행할 유능한 인재를 등용, 그들이 신나게 일하도록 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할 것이다. 그 바탕은 신뢰와 자율, 통합의 리더십이다. 시민사회의 각 부문도 이러한 국가 어젠다를 수행하는 데는 대국적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이러한 자세로 우리가 한국 경제를 살리고 국가안보를 지켜간다면 다른 나라들은 대한민국을 다시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