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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에 정종섭 서울대 법대교수가 쓴 시론 '이런 총리는 없을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번 국무총리의 사퇴사건은 심각하고 충격적이다. 부패의 징조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사건들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자치선거 후에 닥칠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과 함께 현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게 만든다.
이미 차기 대통령선거에 나설 사람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국정은 더욱 정치게임의 양상으로 치달을 것이고, 언론이나 국민의 시선도 이들에게 집중될 것이다. 권력 말기로의 진입에 따라 공직사회에 미치는 대통령의 영향력도 현저히 감소하게 된다. 정치판에서는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이 있을 것이고, 배신의 그늘도 짙고 길게 드리워질 것이다. 권력무상이라고 하지만, 인간과 권력의 속성상 거역할 수 없는 일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듯이 자연의 아름다운 꽃도 열흘을 넘기기 힘든데, 인위적인 권력이 영원할 수는 없다.
더구나 동업자 정부하에서는 권력해체의 과정은 더 심각할 수 있다. 이제는 동업자에서 떨어져 각자 살 길을 찾을 것이고, 남은 기간 각자 주머니를 열심히 챙길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패와 부정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여기에 정치적인 계산에 따라 국정까지 춤을 춘다면 그 혼란과 피해는 실로 엄청나고 한국의 대통령제는 또 한 번 실패의 맛을 보게 된다.
너무나 안타깝게도 현재 대통령의 권위는 추락할 대로 추락해 있고, 개혁의 방향과 방법상의 오류로 들쑤시고 벌여놓은 일 중 엉망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이 상태에서 ‘실패한 대통령’으로 끝낼 수는 없다. 권력을 앞에 놓은 정치판의 싸움이야 또 진흙탕 속에서 난장판이 되겠지만, 그래도 국정은 바로 운영되어야 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도 ‘성공한 대통령’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현재까지 유지되어온 분권형 국정운영은 포기되어서는 안 되고, 실질 총리에 적합한 능력 있는 인물을 잘 골라 배치하여야 한다.
실질총리제는 총리가 소통령인 양 떵떵거리는 실세로 군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정운영상 사실상의 권한 위임으로 대통령과 역할을 분담하되, 대통령을 보좌하며 내치를 관장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권력실세가 총리가 되면 역학관계상 실패하고 만다. 원래의 기능대로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내치를 잘 알고 각 부처 간의 업무를 잘 조정하고, 국정의 의사소통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능력 있고 덕망 있는 사람을 배치하여야 한다.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직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임명직인 국무총리가 정치인을 겸하게 되면 실질총리제의 장점보다는 권력투쟁에 몰입하게 되고, 따라서 국회와의 의사소통도 더 꼬이게 된다. 국회의원이 국무총리를 하는 경우에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총리직에 전념해야 정치적인 딴 계산도 하지 않고 실질총리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대통령은 여당에서 탈당하여 초연한 자세로 실질총리제로 국정을 탄탄하게 운영하되, 그간 벌여 놓은 일을 점검하고 과잉아이디어와 현실적합성이 없는 일들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대통령의 과제(President’s agenda)는 백화점식으로 늘어놓는 바람에 이제는 구별도 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져 버렸다. 그런 만큼 국가 운명이 걸린 장기과제 2~3개에 집중하여 그것을 뚜렷이 구체화해야 한다. 이제는 코드인사라는 하책도 버리고 통 큰 마음으로 해당 분야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을 구해야 한다.
총리는 국정의 실질을 잘 아는 인사여야 하고, 다음 행보를 계산하는 정치인이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과 남은 임기 동안 운명을 같이 할 사람이어야 하고, 무엇보다 능력과 인품이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