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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에 이 신문 김영수 산업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일본 젊은이에게 ‘가장 존경하는 일본 기업인이 누구냐’ 물어보면 비슷한 답이 나온다. 마쓰시타 전기 그룹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쇼이치로, 그리고 교세라(세라믹 제조업체) 그룹의 명예회장 이나모리 가즈오 등 3명이다. 이 중에서도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은 일본식 표현으로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고(故)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이자, 박지성 선수가 활약했던 교토퍼플상가를 후원하면서, 한국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존경받는 이유는 ‘투명경영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27세에 단돈 3000만원으로 창업, 매출 40조원짜리 대기업을 키워낸 그의 경영철학은 ‘기업은 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며, 이마에 땀 흘려 가며 얻은 이익만이 기업이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라는 것이다.
그가 존경받는 또 다른 이유는 회장을 그만둔 다음에 있다. 그는 퇴직금 6억엔(56억원)을 몽땅 모교인 가고시마 대학과 관련 교육기관에 기부했다. 본인은 불가(佛家)에 귀의, 탁발승으로 거리 설법에 나섰다.
한국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두 명의 기업인이 언뜻 머리에 떠오른다.
지난 1996년. 이건희 삼성 회장을 미국 LA에서 세 시간 동안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회장은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 경제가 어떤 새로운 동력으로 성장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반도체에서 미국·일본 기업을 제치고 1등을 했는데 자동차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비록 삼성의 자동차 실험은 실패로 끝났지만, 진지하게 한국 경제의 신(新)동력을 고민하던 모습은 기억에 생생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는 세 차례 인터뷰를 했다. 김 회장은 항상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는 시간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골프를 하지 않았고, 술도 즐기지 않았다. 식사도 10분 안에 후다닥 해치웠다. 이 때문에 김 회장 수행 비서들은 식사시간이 따로 없어 항상 주머니에 먹을 것을 넣어두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리비아,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같은 지도상에서나 알았던 시장을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 상상도 못할 일들을 뚝딱 해치웠다. 김 회장이 키웠던 대우자동차,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같은 회사들은 이제 세계 시장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가고 있다.
물론 이 회장이나 김 회장을 비판할 여지가 많다. 이 회장은 X 파일 사건이나 편법 상속으로 공격받고 있고, 김 회장은 대우 부도 후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을 10조원 이상 쓰게 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러나 두 기업인에 대한 평가를 보면 국내외에서 심각한 온도차를 느낀다. 국내에서는 공(功)보다는 과(過)에 무게가 실려 있는 분위기지만, 외국에서는 두 명의 한국 기업인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지에 주목한다. 이 회장의 인재 우선주의와 김 회장의 세계경영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재로 쓰일 만큼 연구 대상이다.
요즘 우리 기업인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에 대한 공과(功過)를 균형 있게 평가하는 작업이 기업가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새 희망을 주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