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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칼럼 '골프와 등산은 다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해찬 총리의 ‘3·1절 골프’에 대해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3·1절에 등산하는 것은 괜찮고 골프 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냐”고 했다. 같은 운동이고 같은 여가 선용인데 왜 골프에만 미운 살이 박혔느냐는 푸념 같은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골프와 등산은 다르다. 달라도 사뭇 다르다.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운동이고 등산은 거의 공짜다. 골프 한번 나가는 데 드는 비용은 대체로 20만원 이상이라는데(골프회원권까지 치면 더 비싼 축이지만) 등산은 입산료 정도만 있으면 된다. 골프는 거의 어느 경우건 하루 종일 걸리는 시간 소모성 운동이고 때로 며칠이 걸리는 운동이다. 그러나 등산은 적어도 골프의 절반 정도 시간만 있으면 된다. 골프는 기타 의류 음식 등 부대비용이 많이 드는가 하면 등산은 등산화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골프는 일반적으로 ‘귀족운동’이고 등산은 ‘서민운동’이라고 한다.
그래도 같은 운동이기에 근무하지 않는 날, 골프 칠 사람은 골프치고 등산 갈 사람은 등산가는 것은 각자의 자유고 선택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여유 있게 노는 것이고 여유가 부족한 사람은 그 여유에 맞춰 살면 된다. 대한민국의 장점은 그것이 보장된 나라다. 쉬는 날 누가 무엇을 하고 쉬든지 간섭할 이유는 없다. 공직자라고 차별해서도 안 되고 차별 받아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 언론들은 그 골프 회동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그 모임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으며 그것에 정치적으로 어떤 복선이 깔려 있는지에 관심을 쏟고 있다. 물론 그런 정치 로비와 이해관계의 주고받음이 법에 걸리는지 또 고위공직자의 윤리규범에 어떻게 저촉되는지는 온 국민의 당연한 관심사다. 하지만 그런 일들과 ‘귀엣말’들은 골프에서 이루어질 수 있듯이 등산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기골프’도 그렇다. 골프 치는 사람들 스스로 골프는 격(格)이 있는 운동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이 안 보는 데서 내기를 하는 이상, 방이나 호텔에서 포커 하고 고스톱 치는 것은 괜찮고 골프에서는 내기하면 안 된다며 길길이 뛸 일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그 골프를 못 치면 병날 것처럼 몰두하고 또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 즉 다시 말해 노무현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바로 이 나라 빈부의 양극화를 정권의 화두로 내걸고 그것의 해소를 정권의 정당성과 도덕성의 모토로 내걸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양극화’라는 분열적 대립적 의미의 용어를 쓴 것에는 정략적 냄새가 짙지만 빈곤문제가 우리사회의 시한폭탄 같은 존재이며(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이의 해소가 국가적 과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문제를 심각히 제기하는 사람들이라면, 과거정권들에게 ‘분배’의 개념은 없었다며 대량실업, 빈부격차의 확대, 서울역 지하도와 달동네 차디찬 골방에서 연명을 ‘카지노 경제’의 산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골프와 등산이 무엇이 다르냐”며 대들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당 몇 십 만원의 돈이 드는 경기를 하면서 몇 십 만원의 내기를 즐기며 누가 돈을 댔는지도 모르는 접대 풍토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 거기서 업계사람 한통속 사람들과 이권 얘기를 해서는 곤란하다. 현 정권 사람들은 입만 열면 기득권 운운하며 편을 가르고 강남사람 서울대 출신을 ‘기득’의 상징으로 몰고 가지만 국민들 보기에 ‘이해찬 골프’는 노정권사람들은 과연 과거 기득권층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원인과 증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빈민들이 노숙한다고 같이 노숙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판잣집 옆에 큰 저택을 짓는 행위는 삼가야 하는 것이 또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사회의 기본 도덕률이다. 입으로는 양극화를 얘기하고 ‘카지노 경제’를 공박하면서 그 지도부들이 뒤에 가서는, 남 안 보는 데서는 과거 그들이 비난했던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되풀이 하고 거짓말을 남발하는 행위를 한다면 그들은 과거의 기득권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집권 3년을 넘어선 노무현 정권은 이미 기득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