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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0일자에 실린 사설 <이 판국에 '이해찬 구하기'라니>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여권 기류가 ‘이해찬 구하기’로 선회되고 있다. 청와대와 총리실에서, 여당 일각에서 이 총리 유임론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이강진 총리 공보수석은 8일 이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 5일 이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실상 사의를 표명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사흘만이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하루 앞선 7일 “이 총리가 사퇴하면 국가의 틀이 흔들리게 된다”고 대국민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 때맞춰 여당내 친노 그룹으로 분류되는 의원들 사이에서부터 총리가 사퇴할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 나왔다. 여권이 총체적으로 이 총리 유임을 위해 발벗고 나선 분위기다.
국민을 이렇게 우롱해도 되는 것인가. 어이가 없다. 이 총리의 3·1절 골프 파문이 파괴력이 큰 돌발 악재여서 그런지 여권 전체가 제 정신을 잃은 듯하다.
여권은 이번 골프 파문이 단순히 3·1절이자 철도노조 파업 첫날이라는 부적절한 시기에 벌어졌다는 단순한 차원을 넘어섰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범법 경력이 있는 인사들과의 부적절한 회동이었고, 교육부 공정거래위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연관된 검은 의혹들이 속속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인사가 포함돼 있었던 것은 물론 밀가루 가격 담합 혐의로 공정위 조사를 받은 영남제분 류원기 회장도 함께 라운딩했다. 특히 교원공제회가 지난해 영남제분 주식을 대량 매입할 당시 이 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이기우 교육부 차관, 김평수 교원공제회 이사장이 류 회장과 함께 수차례 골프한 것으로 드러나 모종의 흑막이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골프모임에 참석한 일부 인사들이 지분을 갖고 있는 한 회사는 현 정부 들어 대규모 관급공사 등에 참여해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 총리는 이들 부적절한 인사를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관으로 초대해 식사를 함께 했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실세여서 그런지 공사조차 구분 못하는 안하무인격 행태다.
골프모임에 참석한 인사들이 이 총리를 사업 성장을 위한 로비에 이용하려 한 것인지,아니면 이 총리가 실제 이들을 도와주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강진 수석과 이기우 차관의 잇단 해명 가운데 상당 부분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고,당사자인 이 총리는 진상에 대해 함구한 채 8일 일자리 만들기 당정회의에서 “공직자는 처신에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러나 구린내 나는 의혹들이 연이어 터져나오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내일이면 또다른 새로운 의혹이 양파껍질 벗겨지듯 제기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따라서 국정조사나 검찰수사를 통해서라도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국정조사나 검찰수사가 철저히 이뤄질 경우 일부 골프 참석자는 사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으로 국민들은 충분히 분노하고 있다. 이 총리의 권위는 추락할대로 추락했고, 영도 서지 않게 됐다. 그러한 이 총리를 유임시키겠다는 것은 국민과의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오기 정치’의 극치일 뿐이다. 민심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행태다.
노 대통령이 아프리카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만에 하나 이 총리를 유임시키더라도 국민들은 총리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 총리가 국회 본회의장 등에서 한 말을 흉내내자면 국민들은 “별꼴 다 본다” “까불고 있네”라고 조소를 보낼 것이다. 여권은 이렇듯 상황이 엄중하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총리는 노 대통령이 귀국하는 대로 총리직에서 물러나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게 옳다. 이 총리로부터 “10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한 공무원”이라고 칭송받은 교육부 이 차관도 이 총리와 함께 물러나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자유인 신분으로 부적절한 인사들과도 마음껏 라운딩하고, 3·1절이든 산불이 나든 호우가 나든 아무 때나 신경쓰지 않고 골프를 치면 누가 뭐라 하겠나.
생각할수록 창피한 일이다. 국민에게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