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김승환 명지대 정외과 교수(미국 CSIS 고문/선임연구위원"이 쓴 '워싱턴에서 본 한·미관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한 달 동안 워싱턴에 머물면서 각계 인사들을 만나 본 결과, 한·미 동맹관계가 노무현 정부 집권 3년 동안 눈에 띄게 퇴보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백악관이나 국무부 관리들은 공개적으로는 현재의 한·미 관계가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정부에 대해 비공식 석상에서 털어놓는 불쾌감과 실망감은 무시 못할 정도다.

    미 국무부의 한 전직 관리는 “부시 행정부 내 많은 고위 인사들이 노무현 정부를 신임하지 않고 있다. 지나치게 친북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노 대통령이 해외 순방시 북한 정권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 미국 내 많은 인사들을 분개시켰고 그에 대해 의구심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관리들 사이에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는 더욱 노골적이다. 한 고위 관리는 “한국에서 전교조가 어린 세대에 ‘반미’를 가르치고 있고, 그것을 한국정부는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그 결과, 북·미 간 전쟁이 나면 한국의 젊은 세대의 66%가 북한 편을 들겠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한·미 관계가 앞으로 온전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미 의회의 분위기도 썰렁하다. 한국에서의 반미감정과 한국정부의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 및 친북적 태도에 대해 많은 상·하원 의원들이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한 의회 관계자는 “한국의 많은 국민이 북한을 ‘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군사위협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데 왜 미국이 매년 30억달러의 비용을 들여 미군을 계속 한국에 주둔시켜야 하느냐며 문제 삼는 의회지도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최고위 정보책임자들은 지난달 28일 상원 군사위 증언을 통해 최근 북한과 이란을 미국의 안보에 있어서 테러에 버금가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라고 재차 규정한 바 있다.

    워싱턴의 한 저명한 한반도문제 전문가는 “한국정부 때문에 북핵문제가 더욱 어렵게 꼬이고 또 북한의 버릇이 나빠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가 잘 풀리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 행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앞으로 6자회담은 한 번 정도 더 열리겠지만, 그 후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의 행정부 내 입지도 전과 같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다음 6자회담에서, 미국이 핵확산방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은 인도에 핵무기 기술을 제공하기로 합의한 것을 문제 삼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작년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공동합의문이 나왔을 때 미국측 회담 관계자들 가운데 합의사항이 잘 이행되리라고 기대했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며 “한국 정부만이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과대포장하여 홍보했기 때문에 지금 실망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핵문제와 함께 위폐제조, 돈세탁, 마약 밀거래 등 북한의 불법행위를 근절시키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미 재무부 관계자들은 7일 북한 외교부 이근 북미국장을 뉴욕에서 만나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배경설명을 했으나, 이 문제를 놓고 ‘협상’ 하거나 북핵문제와 연계시킬 의사는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한·미 관계는 이미 초과 달성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요즘 워싱턴의 분위기와 너무나 대조적인 진단이다. 앞으로 2년 뒤 노 대통령은 대미 외교에서 어떤 유산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게 될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미 양국은 ‘공조’와는 거리가 먼 어디쯤을 향해 각자 가고 있을 것이고, 북한은 핵무기 생산을 계속하여 동북아의 새로운 핵 보유국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안보 상황은 예측키 어려운 새로운 위기국면을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