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서지문 고려대 영문과 교수가 쓴 시론 '이해찬의 얼굴, 참여정부의 얼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해찬 총리가 3·1절 골프 물의와 관련해서 자신의 거취문제를 숙고 중이라는 소식이 많은 사람에게 뜻밖으로 느껴지는 것은, 이제껏 그가 오기와 오만과 독선과 아집으로 뭉쳐진, 남을 무시하고 경멸할 줄만 알았지 자기 성찰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비쳐져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사소한 비난에도 눈에서 독기를 뿜으며 몇 배 사납게 반격을 하고, 국민의 여론이나 정서는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인간으로 보였던 이총리는 싸움닭, 검투사 같은 이미지로 국민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그는 우리 국민이 원하는 총리의 이미지와 인품의 정반대 극점에 있었다. 우리 국민은 대통령에게서보다도 더 총리에게서 원만하고 포용력 있고 인내심 있는 인품을 원한다. 그러나 이해찬 총리는 완강하고 독선적인 표정으로 국민의 심기를 스산하게 했고 독기에 찬, 거칠고 안하무인적인 말을 쏟아내어 국민을 섬뜩하게 했다.

    그의 말투에는 자신은 실수나 과오를 범할 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를 공격하는 인간은 모두 정치모리배, 인간쓰레기, 반역자라는 확신이 너무 생생하게 드러났다. 그 나름대로는 우리 정치풍토의 폐단과 싸운다고 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투쟁은 우리의 정치문화를 한층 살벌하고 천박하게 만들었다.

    나는 국회의원을 특별히 싫어하고 국회의원들의 대정부 질의 관행에 잘못된 점이 매우 많다고 생각하지만 이해찬 총리의 습관적인 국회의원 모욕에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다. 이해찬 총리가 국회에서 막말로 국회의원을 무시하고 꾸짖은 것은 국회의원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의 전당으로서의 ‘국회’의 상징성을 모독하는 것이었다.

    어느 지방단체장이 자기보다 하수라느니, 질의를 들으며 국회의원의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느니, 어떤 질문에는 대답하기도 창피하다느니 하는 따위의 말은, 그 내용에 공감하는 국민이라 하더라도 총리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다. 어느어느 신문사는 민족반역자이고 내 손안에 있으니 까불지 말라는 말은 그가 투쟁하느라 감옥에도 갔던 독재정권의 총리의 입에서나 나올 만한 말이 아닌가?

    그가 국민감정에 거슬리는 골프를 한 번 한 것은 생각이 짧아서였다고 ‘양해’할 수도 있겠지만, 그 후에도 거듭거듭 나라의 재난상황에서 골프를 하고, 이번에 전국 철도노동자 파업이 있었던 3·1절에 불법 정치자금 제공 기업인, 주가조작 관련 전과사범 등과 골프를 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행위이다.

    그의 총리로서의 업무상 공과는 차차 드러날 것이다. 그의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매우 잘못되었고 그가 업무를 추진한 방법이 총리답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각 부처 간에 상충되는 업무를 조화시키고 모든 부처를 총괄하는 국정의 비전을 창출하고 국민의 정서를 파악해서 대통령에게 적절한 조언을 하는 총리의 역할에 이해찬 총리는 전적으로 부적격자였다.

    노 대통령은 의지했던 파트너를 떠나보내기 싫겠지만, 참여정부 남은 2년간 그를 보좌할 총리로서 이해찬과 같은 검투사가 필요한지, 민의에 민감하고 사려 깊고 품위 있는 총리가 필요한지 처절히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