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린우리당 의장에 선출된 후 20일 첫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정동영 의장은 “앞으로 말은 짧게 하고 행동하는 모습으로 당을 이끌겠다”고 했다. 즉시 이날 오후 정 의장은 서울대 정운찬 총장을 찾았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행동 차원으로 교육 양극화 문제에 대한 정 총장의 고견을 듣겠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앞서 의장 선출 직후인 19일에는 한나라당 텃밭인 대구를 찾아 ‘지방정부 심판론’도 천명했다.

    당 조직도 염동연, 박명광 의원을 사무총장과 비서실장으로 각각 기용하는 등 강력한 ‘친정체제’ 굳히기에 들어갔다. 우상호 대변인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총력전의 의지가 담긴 인사로 봐 달라”고 했다.

    당과 자신의 명운이 걸린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양극화 해소, 이른바 ‘빈부 대결 띄우기’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불퇴전의 각오다. 물론 지난 2004년 ‘노인폄훼’ 발언 등 말 때문에 당한 곤욕을 중차대한 이번 시기에는 뭔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담고 있다.

    하지만 막상 당 일각에서는 정 의장의 이런 행보를 놓고 “불안하다. 조마조마하다”는 반응이다. 현재 당 지지율만을 놓고 볼 때 당장 ‘영남 공략’은커녕 ‘호남 수성’도 위태롭다는 관측이다. 뭔가 반전이 있지 않는 한, 이번 지방선거는 ‘불길로 뛰어드는 불나방’ 꼴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일하게 손 써 볼 수 있는 카드가 양극화 해소 부각에 따른 ‘빈부대결 띄우기’지만 이 마저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고건 전 국무총리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불분명한 행보와 당의장 선거에서 당내 재야파를 이끌고 있는 김근태 최고위원과의 격차를 크게 벌이지 못한 불안한 1위를 한 점도 정 의장을 더욱 조급하게 만들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 의장의 조급증은 행동으로 이어지고 자칫 자충수로 이어지는 날이면 당이 돌이킬 수 없는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근태 최고위원은 “전당대회 이후 중대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당이 무력하게 난판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당 핵심 의원의 한 측근은 “지방선거 패배시, 책임론을 둘러싼 각 계파간 공방이 치열할 것”이라면서 “정동영계를 중심으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순간 당이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장 정 의장이 단행한 당 조직 인선을 놓고서도 당내 ‘개혁·강경그 룹’ 진영의 “짜증난다”는 입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과의 통합론’을 줄기차게 주장해온 염동연 의원의 사무총장 임명이나, 당 의장격인 열린정책연구원장을 맡은 박명광 의원을 의장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데 대한 적잖은 실망이다. 이에 따라 “정 의장이 차기 대선에만 신경 쓰는 것이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여권 내 차기대선 구도와 맞물려 뒤쫓는 김근태 최고위원과, 한치 앞도 치고 나갈 수 없는 현 정치구도 상황에서 ‘반 한나라당 연대’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을 감안할 때, 정 의장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이다. 당 안팎에서는 차기 여권내 대선 구도를 염두에 두고 있는 정 의장이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반전 카드로 무모한 돌출 행동을 보이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