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김기철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더스틴과 모라는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전형적인 미국의 20대다. 백악관 인턴 경력이 있는 더스틴은 정치 지망생이고 모라는 제약회사 입사를 앞두고 있다. 이들은 사형제도에 찬성하고 낙태에는 반대한다. 2002년 선거 때 공화당을 위해 일했지만 몇몇 우파적 입장엔 반대한다. 동성애에 대한 편협한 태도를 혐오하고 미국이 사담 후세인 문제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데 불만을 갖는 것이 그렇다.

    이들이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는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나이든 사람들이 아니라 현 상태를 바꾸려는 젊은 사람들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기자 존 미클레스웨이트가 동료와 함께 미국 우파를 분석한 ‘더 라이트 네이션(The Right Nation)’은 더스틴과 모라처럼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이 진보를 택한 사람의 두 배가 넘는다고 했다.

    하지만 태평양 건너 한국의 보수는 인기가 없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작년 말 ‘보수와 진보 중에 무엇이 더 좋은가’라고 여론조사를 했더니 ‘진보’가 더 많이 나왔다. 한길리서치연구소도 그 즈음 ‘차기 대통령은 어떤 이념적 성향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53.4%가 진보적 성향을 선호한 반면 보수적 성향은 27.3%에 그쳤다. 진보를 내세운 현 정부의 무능과 실패가 보수의 승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의 보수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실패했다. 뉴라이트 운동을 이끄는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내놓은 자기 비판부터 들어보자. 보수 우파는 과거 민주화나 인권이 이슈로 떠올랐을 때 눈을 감았다. 지도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는커녕 특권을 누리는 데 급급했다. 관용의 부족은 보수의 아킬레스 건이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의견과 가치관을 이단시하고 매도해 온 게 보수다.

    한국의 보수는 정치권력 획득에 잇달아 실패하면서 더 조급해지고 과격해진 것 같다. 걸핏하면 정권 탓이고 권력 핵심부에 진출한 386세대 트집잡기에 여념 없다. 국정 운영의 미숙함이 이런 비판을 정당화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 대안을 내놓지도 못한다. 파이를 키우자는 주문만 외울 뿐 사회적 약자들을 어떻게 챙길 것인지 말이 없다. 남녀가 평등한 개명 천지인데 호주제 폐지 같은 얘기만 나오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화부터 낸다. “박정희 시대가 좋았다”는 식의 퇴행성까지 심심찮게 드러낸다.

    변화의 싹은 보인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출신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을 담은 공동체 자유주의를 내세운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법치의 바탕 위에, 빈부격차 같은 부작용이 있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상생의 관계로 보완하는 상생적 자유주의를 제안한다. 사회적 약자를 껴안는 보수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페미니스트 보수주의자, 외국인 노동자와 동성애자 같은 사회적 소수에 관심을 갖는 보수주의자, 개발 못지않게 생태 파괴를 걱정하는 보수주의자, 국방의 의무를 기꺼이 짊어지면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이해하려는 보수주의자는 나올 수 없을까. 다른 생각은 무조건 배척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딱딱한’ 보수로는 승산이 없다. 18세기 보수주의의 아버지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란 수구나 반동이 아니라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며 점진적 개혁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보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유연한 상상력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