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란에 이 신문 진뱡근 조선일보 국제부 남미팀장이 쓴 'KBS가 차베스를 띄운 이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8일 저녁 KBS 1TV 시청자들은 잠시 혼돈스러웠을 것이다. 황금 같은 주말 오후 8시, ‘KBS 스페셜’에서는 남미의 ‘좌파 영웅’이 소개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 57분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과 그의 정치 역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다큐는 도입부에서 ‘미국의 일방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항해 또 다른 꿈을 꾸는 이들에게 차베스는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문을 연 다음, ‘남미의 오랜 염원이 21세기의 차베스에 의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기대로 끝을 맺었다.

    이 다큐에 따르면 차베스는 분명 남미의 기대주이자 새 희망이었다. 시종 화면은 호기로운 지도자와 열광하는 군중으로 채워진다. 인터뷰 대상도 그곳 국영TV 사장, 대통령국제관계연구소장,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로 유명한 ‘세계사회포럼’ 참가자 등이다. 반(反)차베스 내용은 ‘반(反)개혁’의 맥락에서 스치듯 소개될 뿐이고, ‘차베스 1인체제’에 대한 지적도 말미에 몇 마디 정도다.

    하지만 이것이 차베스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남미 희망’의 전모를 전달했다고 생각한다면 ‘KBS 스페셜’ 제작진은 무지했거나, 최소한 불성실했다. 차베스에 대한 평가는 중남미에서조차 논란거리다. 이 지역 대표 지성 중의 한 명인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는 지난 1일 한 시론에서 차베스를 ‘좌파인 척하는 열대의 무솔리니’라고 평했다. 그만한 독재가 없다는 말이다. 그가 중남미의 희망으로 꼽은 인물은 오히려 좌파이면서도 실용노선을 걷는 칠레 대통령이었다. 미국의 국제문제 격월간지인 포린 폴리시는 1~2월호에서 차베스의 리더십을 두고 아예 ‘새로운 유형의 독재’라고 평했다.

    그럼에도 다큐는 차베스 ‘미화’에 급급했다. 그가 집권 후 제정한 새 헌법을 ‘개혁’의 청사진으로만 묘사했지만, 그것은 1인 권력 집중의 각본이기도 했다. 남미에서도 가장 반(反)정당적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다. 이 헌법을 통해 그는 상원을 없애 의회 내 ‘걸림돌’을 하나로 줄였고, 의회법도 고쳐 주요 입법을 단순 과반 찬성으로 가능하게 했다. 대법관의 수도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고 새 자리엔 ‘혁명전사’들을 앉혔다. 선거감독기구를 장악했고, 주 수입원인 국영 석유회사(PDVSA)를 접수했다. 선거기간 중 석유 수익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국민의 통제 밖이다. 그는 언론법을 만들어 보도내용을 정부가 통제했다. IPI(국제언론인협회)는 그를 언론 탄압 지도자로 지목했다.

    KBS 다큐는 차베스 체제에 대해 이른바 ‘내재적 접근’을 취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쪽만을 부각하다 보니 시청자를 외눈박이로 만들었다. 제작진은 자막에서 베네수엘라 국영TV로부터 자료협조를 받았다고 밝힌다. 이 방송은 차베스 대통령이 매주 국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 내용의 홍보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곳이다. 자막에는 몇몇 국내 전문가들의 자문도 받았다고 돼 있지만, 이 중 한 교수는 자신의 이름이 올라있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KBS는 이 다큐를 통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지도자 차베스의 길이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이라는 강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겼다. 반면 과연 그 길이 옳은지에 대해 시청자들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는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큰 의문은 이것이다. 왜 지금 남미 반미좌파의 선봉인 베네수엘라 지도자의 영웅담을 그 나라 국영TV도 아닌 KBS에서 봐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