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에 이 신문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가 쓴 '정동영의 콘텐트'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학교 때 1등을 한 적이 없다. 반장은커녕 줄반장도 해 본 적이 없다. 남들 앞에 선 것은 방송기자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런 정동영에겐 특별한 재능이 있다. 표현력이다. 자기를 알리는 능력이다. 상황을 사람에게 전하는 능력이다. 열린우리당의 전국 순회 유세전에서 정동영의 표현력은 돋보였다. 정동영의 표현력은 말과 표정과 제스처에서 나온다.

    ①말=소리가 입 밖에서 퍼져 없어지지 않고 모여서 쭉 나아간다. 말에 운율과 리듬감이 있다.

    예컨대 그는 충북 유세 때 "참여정부가 잘한 것 하나. 사람~, 돈~, 정보~, 모두 다 서울로오~ 서울로오~ 가던 시대를 끝내고 이젠 사람도, 돈도, 공공기관도 지방으로 오는 시대를 만들어 냈습니다"고 했다. 어미의 적절한 생략, '사람, 돈, 정보(공공기관)'의 나열과 반복, '서울로 가던 시대'와 '지방으로 오는 시대'의 대비와 리듬감이 호소력을 높였다. 음색이 낭랑한 건 타고났다. 하지만 음량에 낭비가 없고 말에 씨가 박힌 것은 정확한 발음 덕이다. 전북도의원을 지낸 아버지가 그의 어린 시절 "남자는 말끝이 분명해야 한다"며 밥상머리 언어교육을 철저하게 시켰다고 한다.

    ②표정.제스처=정동영의 눈은 듣는 이를 향해 있다. 좀처럼 원고 쪽으로 내려다 보지 않는다. 얼굴과 몸통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청중의 눈에 자기 시선을 맞춘다. 강한 주장을 펼 때 한 손을 끌어올려 위아래로 도마질하듯 흔들어 변화를 주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표정이 살고 몸에 생동감이 돈다.

    정동영의 표현력엔 용기가 있다.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을 터치하고 건드린다"는 정신이다. 2000년 말 누구도 대놓고 얘기하기 꺼렸던 '권노갑 2선 후퇴'를 주장한 건 정동영식 표현의 백미였다.

    문제는 표현력만으로 좋은 정치인이 되는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콘텐트 없이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인도 많다. 정동영이 정적에게 입은 상처는 이것이다. 탁월한 표현력이 콘텐트를 빈약하게 보이게 한다. 그 상처는 표현력에 상응하는 단단한 콘텐트로 치료될 것이다.

    광고 카피는 표현으로 승부하는 세계다. 거기엔 이런 금언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말하느냐이다."

    정치의 세계는 다르다. 정치 지도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사람들의 공동체를 좋은 목적지로 안내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가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이다.

    품고 있는 '무엇'이 바로 콘텐트다. 콘텐트는 비전과 프로그램과 체험이 단단하게 뭉쳐진 덩어리다. 바다 위의 배로 치면 비전은 항해의 목적지다. 프로그램은 방향키와 선장의 손에 들려 있는 지도다. 내적인 체험은 배의 추진력, 엔진 같은 것이다. 박근혜의 콘텐트는 내적 체험에서 나온 '국가 정체성'이다. 이명박의 콘텐트는 일하는 방법을 실적으로 입증한 실행 프로그램이다.

    정동영의 콘텐트는 '남북 평화체제 구축'이란 비전일 것이다. 그런데 정동영의 비전은 환히 드러나 있지 않고 실천 프로그램이 부실하다. 김정일의 결심에 의존하는 바도 크다. 그래서 그게 우리 공동체가 가야 할 진정한 목적지인지 흔쾌하지 않다. 그의 비전이 인생을 관통하는 체험보다 짧은 통일부 장관 시절 만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차기 대통령을 꿈꾸는 정동영의 도전은 안에 있다. 단단한 콘텐트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건 2.18 전당대회 승리보다 값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