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평론가 전대열씨가 14일 뉴데일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네티즌의 일독을 권합니다.

    사립학교법을 둘러싼 재개정 문제가 아직 확실한 매듭을 짓지 못하고 있다. 날치기로 법을 통과시킨 여당 측에서는 글자 한 획도 고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장외투쟁을 벌이면서 벼랑 끝까지 나갔던 야당에서는 기어코 재개정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는 처지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북한산 등산으로 가슴을 열고 일단 재개정을 논의하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도리 밖에 없지만 관계단체들의 움직임은 부산하다.

    특히 사학수호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한 시민단체와 종교계 및 사학법인협의회 등은 목회자 5000명이 영락교회에서 기도회를 여는가하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수만명을 모아놓고 대대적인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재개정 논의의 한 축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와 최고위원 등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여하여 재개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 시점에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사학법의 핵심사항인 ‘임시이사’의 권한을 놓고 명백한 판결을 내려 주목을 끌고 있다. 이 사건은 상지대를 설립한 김문기를 배재한 채 교육부에서 파견한 임시이사들이 자의적으로 정이사를 선출하여 사립학교의 근간을 뒤엎고 주인을 쫓아낸 것인데 1심에서는 이를 인정했기 때문에 고법의 판결내용을 놓고 관계자들의 관심이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사학법이 현안으로 떠올랐고 이 판결여하에 따라 교육부에서 큰소리치는 “비리사학은 특별감사를 거쳐 임시이사를 파견하면 된다”는 도식이 성립될 것인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었다. 많은 사학들이 임시이사만 파견되면 학교를 뺏길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판이라 더욱 관심이 모아졌다. 상지대는 이미 13년 전에 임시이사가 나와 기나긴 10년 세월을 교육부의 낭중지물이 되더니 급기야 정이사 체제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양심적인 시민단체들이 진실규명에 나선 것도 벌써 3년째다. 이 운동에 대하여 교육부는 콧방귀로 응대하며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이었고 상지대를 탈취한 자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남의 재산을 마음대로 주물러댔다. 김문기 설립자가 확보해놓은 땅도 팔아먹고 시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껍데기뿐인 명예까지 추구했다.

    평생 고생하면서 벌어놓은 돈으로 후세를 위한 학교설립을 한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이 가진 돈으로 자자손손 나만 잘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을 털어 학교를 세운 것은 국가와 사회를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은 것 아닌가. 존경 받아야 할 사람이 오히려 ‘비리’라는 이름으로 감옥을 가고 학교를 뺏긴다는 것은 자유민주 시대의 정신에 역행하는 일이다.

    물론 사학을 운영하며 부정과 비리를 저질렀다면 가차 없이 처벌받아 마땅하다.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그런데 지난번 날치기 통과된 사학법 개정안은 비리척결을 하기 위해서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말썽을 빚고 있는 셈이다. 이번 판결은 개방형 이사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그들의 행동 여하에 따라서 임시이사가 파견되는 경우가 생길 때 일어날 문제에 대한 뚜렷한 해답이 된다.

    서울고법 민사5부(재판장 조용호부장판사)에서는 오랜 심리 끝에 오늘(2월14일)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판결문에서 임시이사의 권한의 한계를 명백히 규정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는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했던 임시이사의 행태에 대한 크나 큰 경고다.

    즉 “사립학교법상 임시이사는 임시적 위기 관리자일 뿐이며 민법상의 임시이사와는 다르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학교법인의 통상 사무에 속하는 행위에 한하여 권한을 가지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밝혔다. 이러한 해석에 의해서 정이사나 다름없는 무제한적인 권한을 행사한 것은 원천적으로 무효임을 선언하고 상지대 문제를 매듭지은 것이다.

    더구나 “임시이사들에게 학교법인의 설립자가 임명한 이사진의 인적구성을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면 학교법인의 경영권이 제3자에게 손쉽게 넘어 간다”고 설파하고 이런 사태가 오는 것은 학교법인의 설립목적 및 취지의 변질로 이어져 독립된 법인격으로서의 학교법인의 헌법상 기본권과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어서 부당하다고 밝혔다.

    판결에서는 학교법인의 형성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을 정이사로 선임한 것은 기독교 학교를 불교학교로 변경하는 것과 같은 경영권 박탈이요 지배구조의 변경이어서 임시이사의 권한 밖의 위법행위로 무효라고 결론지었다. 이 판결은 사학운영의 주체는 설립자임을 확실히 하고 교육부의 임의로 파견하는 임시이사의 권한을 ‘통상업무’로 못 박아 사적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니며 사학법 재개정에도 진일보한 이론을 제공한 것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