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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홍위병의 한국 뛰어넘기

입력 2006-02-14 10:14 | 수정 2006-02-14 10:14
동아일보 14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반병희 사회부 차장이 쓴 '늙은 홍위병의 한국 뛰어넘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주 중국 광저우에서 50대 중반의 류칭씨를 만났다. 중국 광둥성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서 여러 개의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다. 공장은 건물 내장재용 PVC, 첨단 화학섬유, 공업용 모터를 생산하고 있다.

류 씨는 올해 초만도 두 차례나 인도를 다녀오고 춘제(春節·설) 연휴를 이용해 홍콩과 인도네시아에서 신규 사업 파트너를 만나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는 “돈 되는 것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고 얘기한다. 중국의 개혁 개방과 경제성장의 붐을 타고 입신양명한 ‘치예자(企業家)’의 전형이다. 이런 그에게서 급진적 계급투쟁에 앞장섰던 혁명전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1966년 그는 계급적 증오감에 불타는 혁명전사였다. 당시 마오쩌둥은 봉건 구습 타파와 대중민주주의 혁명 달성을 위해 문화혁명을 선언했다. 중학생이었지만 류 씨는 주저 없이 홍위병이 됐다. 일본 유학을 갔다 온 학교 선생님을 사상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길거리를 다니며 큰 상점을 부르주아의 찌꺼기라는 이유로 때려 부쉈다. 대학 교수이던 친구 아버지를 ‘인민의 적’으로 몰아 산악지대 도로건설 현장으로 내몰았다.

나라가 뿌리째 흔들리자 마오쩌둥은 홍위병을 시골로 추방했다. 류 씨 역시 수년간 농촌에서 인분을 치우며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때만 해도 류 씨는 시골생활을 혁명과업 수행의 한 과정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1980년대 말 홍콩에서 젊은 한국 기업인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류 씨의 생각은 꿈쩍하지 않았다.

류 씨가 보기에 30대 중반의 한국 기업인은 세상 물정에 훤했다. 젊은 한국인 사업가가 보여 준 일에 대한 열정과 자신감, 넘치는 조국애는 류 씨의 혁명적 신념을 일시에 압도해버렸다. 그는 한국 기업에 취직했다. 얼마 뒤 한국 기업의 기술과 자금을 지원받아 중국에 합작업체를 차렸다. 한국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 덕분에 시장개척도 순조로웠다. 흔히 하는 얘기로 하루 24시간이 짧았다. 

문화혁명은 류 씨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올해가 문화혁명 40주년이라는 보도를 접한 뒤 ‘잃어버린 문화혁명 10년 세월’에 대한 아쉬움이 어렴풋이 들었을 뿐, 은인인 한국인 파트너에 대한 감사의 마음만 짙어졌다. 한국은 그에게 새 삶을 찾아 준 나라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봄 류 씨는 이 한국인 파트너에게서 이런 고백을 들었다. 

“한국에서 제조업은 승산이 없다. 노조는 경영권까지 간섭하려고 한다. 정부는 이런 노조를 모른 체한다. 인건비는 오르고 기업인은 도둑 취급을 받는다. 의욕을 잃었다. 중국 제품을 수입해 판매해야겠다. 좀 도와 달라.”

경기 평택시와 고양시 일산에 투자하려던 계획을 백지화한 류 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나고 있나 봅니다. 서울을 찾을 때마다 학생과 노동자 시위가 벌어지니 말입니다. 투자를 하겠다는데도 도와주질 않습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로 눈길이 가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이수영 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얼마 전 현재와 같이 기업에 비우호적인 노동환경이 지속된다면 “기업도 파업할 수밖에 없다”고까지 말했다. 홍위병 출신의 기업인 류 씨와 너무나 닮은 상황 인식을 틀렸다고 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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