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김대중 칼럼'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DJ 방북 재고해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하순’ 방북(訪北) 계획은 재고(再考)되었으면 한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일생을 통해 남북관계에 어떤 전환을 가져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남북통일의 이정표에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려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 그이기에 그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최초로 평양을 방문했고, 재임 기간 중 김정일의 답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통탄해왔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이번 재도전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김정일의 답방과 남북연방제 ‘진전’을 위해 비판언론에 끝내 세무조사와 발행인 구속이라는 ‘독약처방’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기에 여기서 멈출 수가 없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제 자신의 생전에 자신이 시작했던 대북 이니셔티브에 어떤 매듭을 얻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거의 신앙이나 집념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집념과 열정은 무리수를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는 현직이 아니다. 그는 권한도 없다. 그가 북한의 지도자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든 그것은 국민적 수임의 무게를 지닐 수 없다. 그런 여건에서 그의 집념은 과욕을 불러올 수 있고 그 과욕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세계 다른 나라의 외교적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직 외교’가 국민들에게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DJ의 경우도 첫째 그의 행보가 6자 회담과 북핵문제 등 남북관계의 교착상태나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타개하는 유일한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때 정당화될 수 있다. 둘째 그와 북측의 어떤 ‘합의’ 내용이 기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법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셋째 그의 방북이 정서적으로 대다수 국민의 성원과 바람을 등에 업고 있을 때도 그렇다. 그리고 자신의 방북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지급하게 될 그 어떤 금전적·물질적 대가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투명한 논의가 전제되는 상황이 바람직하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DJ의 방북이 이런 요건들을 충족시키고 있으며 폭넓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지금 남북상황이 DJ에 목을 맨 처지도 아니고 그가 해결의 마력(魔力)을 인정 받은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의 계획은 개인자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청와대마저도 DJ가 방북하더라도 민간인 신분이며 그 추진체도 DJ 쪽이라며 ‘특사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무슨 책임과 권한으로 나라의 중대한 문제가 걸린 문제들을 북측 지도층과 논의할 수 있으며, 누가 법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런 권한을 줄 수 있는 것인가.

    김정일 입장에서 보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정식특사가 아닌 DJ와 무슨 책임 있는 얘기를 나누려 할 것인가. 북의 DJ 초청은 센티멘털한 성격의 것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대남교란용일는지도 모른다. 시기도 김일성 생일이 든 달이란 점에서 북측이 DJ방북을 이용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일이 남쪽에 줄 ‘무엇’(예를 들어 핵의 포기라든가 6자회담 참여 등)이 있다고 해도 생색이 나는 현직을 상대하지 왜 남쪽에서도 견해가 엇갈리는 인물인 ‘전직’에게 선물을 줄 것인가. 특히 항간에 떠도는 ‘연방제’에 관한 것들이 논의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 쪽에서 더더욱 천부당만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의 막중한 장래가 걸린 일을 DJ와 김정일에게 내맡길 수는 절대로 없는 일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그의 방북은 문제가 있다. 우선 4월 중순이라는 시기가 5·31 지방선거와 연관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아주 치사한 북풍(北風)유도 책동이다. 방북결과에 따라서는 선거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으로서도 그 자신이 남북정상회담을 능동적으로 추진할 입장인데 그것을 굳이 ‘전직’의 후광에 기대는 것 같은 모양새는 그를 초라하게 만든다. 설령 DJ 방북에 무슨 성과가 있더라도 주연이어야 할 노 대통령은 조연으로 밀려나는 모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된다. 노 정권이 그의 방북을 종용하는 것은 DJ의 햇볕정책 계승을 확인해주는 동시에 DJ가 내세우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과 정치적 거래(?)를 하는 인상마저 준다.

    이런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이 방북을 강행한다면 이것은 그러지 않아도 아물지 않고 있는 대북정책의 균열을 더더욱 드러나게 하는, 그래서 남북관계를 더 혼미하게 만들고 나아가서는 남북문제를 ‘DJ와 김정일’로 개인화(個人化)하는 위험한 사태를 초래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