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 다른 환경속에서 자랐고 확연히 다른 정치노선을 걸어온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손발을 맞춘지 12일이면 한 달이 된다. 출발 전부터 정가에선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커질 것이라 관측했다.

    이는 두 사람이 걸어온 환경과 정치노선이 달랐다기 보다는 이 원내대표가 박 대표의 차기 대권경쟁자인 이명박 서울특별시장과 가깝다는 점이 더욱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이 원내대표는 당내 대표적인 '반박(反朴)'그룹의 한 사람이며 동시에 친(親)이명박계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두 사람의 악연은 쉽게 풀리지 않을 만큼 오래됐고 감정의 골도 깊다. 이 원내대표는 유신반대를 주장하다 박정희 정권에서만 3번 구속됐고 15대 국회 때 등원한 이래 박 대표와 밥은커녕 차 한잔 따로 마신 일이 없다고 한다. 또 "독재자의 딸"이라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박 대표 역시 2004년 8월 의원연찬회에서 이 원내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사를 지적하자 그를 지목하며 "내가 대표가 되면 탈당하겠다고 해 놓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말을 지키고 나서 남을 비판해라"고 대응하는 등 감정대립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의 취임 한달이 된 지금 두 사람의 갈등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박근혜-이재오' 체제가 순항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달 13일 취임 후 처음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박 대표와)갈등의 냄새도 내지 않겠다"고 공언한 뒤 박 대표에게 지나칠 정도로 깍듯이 예의를 갖추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박 대표가 회의에 늦을 경우 당사 현관 앞까지 나와 기다린 적도있다. 또 승용차에서 내리는 박 대표에게 인사하며 회의 시작전 의견조율을 나누는 모습 등은 예전의 두 사람 관계를 생각했을 땐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박 대표에게 상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설명하고 의견을 교환한다. 지난달 30일 열린우리당 김한길 원내대표와의 사학법 재개정 협상을 위한 산상회담땐 회담 도중 박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합의조항에 대한 사전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의원총회가 끝나고 본회의장으로 입장하기까지 이 원내대표는 박 대표와 발걸음을 함께 했다. 보폭도 걸음속도도 박 대표에게 맞췄고 대화를 나눌 땐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모습도 보여줬다. 현안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라고 먼저 자문을 구한다.

    이 같은 모습에도 취재진은 여전히 둘 사이를 의심한다. 출입기자들과의 오찬 혹은 기자간담회 자리가 마련될 경우 '박 대표와 호흡을 맞춰보니 어떤가' '의견충돌하는 부분은 없는가' 등의 질문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때마다 이 원내대표는 "언론은 둘 사이에 무슨 갈등이 있었으면 하겠지만 전혀 없다. 내가 박 대표를 흔들려는 '트로이의 목마'일거라 판단했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찰떡궁합"이라 말하기도 한다.

    실제 두 사람은 최근들어 가까워진 듯한 모습을 연출한 바 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박 대표 생일에 노란장미 54송이가 담긴 꽃바구니를 직접 선물하며 축하인사를 건넸고 축하를 받은 박 대표도 이 원내대표에게 농담을 건네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지난 8일 이 원내대표의 생일엔 박 대표가 공식회의 석상에서 축하인사를 건네고 전날엔 집으로 꽃다발을 보내기도 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갈등을 빚을 것이란 정가의 분석을 반박이라도 하듯 순항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두 사람의 임기는 7월에 있을 전당대회까지다. 임기 마지막까지 '박근혜-이재오'체제가 순항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높다. 당장 사학법 재개정 문제 해결과 5·31지방선거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또 지방선거 이후 치러질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권후보인 박 대표, 이 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세다툼이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두 사람이 언제까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버리고 '찰떡궁합'이란 주장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