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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과 나이키 운동화

입력 2006-02-10 09:12 | 수정 2006-02-10 15:18
동아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박제균 정치부 차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 장의 사진이 떠오른다. 명절 때 집 뒷산의 묘소를 찾은 아버지와 아들이 풀밭에 걸터앉아 있다. 익살스러운 아버지는 아들의 장난감 권총을 들어 왼쪽 눈을 감고 총 쏘는 시늉을 하고 있다. 열 살 남짓한 아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노무현 대통령과 아들 건호 씨다. 2002년 대선 전후에 인터넷 어디선가 본 이 사진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노 대통령이 신고 있던 운동화 때문이다. 

양복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것도 특이했지만, 운동화의 독특한 로고가 눈길을 끌었다. 나이키 운동화였다. 

사진을 찍은 시점은 노 대통령이 부림 사건 변호로 재야 운동에 뛰어든 1981년 이후로 보인다. 재야 인권 변호사였던 노 대통령이 당시 일부 운동권 학생이 ‘매판의 상징’이라고 매도했던 미제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데서 양복에 운동화를 신은 것만큼이나 기묘한 부조화를 느꼈다.

1980년대 초중반 많은 청소년에게 나이키 운동화는 특별했다. 멋들어지게 꺾여 올라간 로고가 붙은 가죽 운동화는 ‘시장표 운동화’가 몇천 원하던 시절에 몇만 원이나 했다. 그래도 그걸 신고 싶어 했던 애들은 용돈을 모으기도 했고, 그럴 형편조차 안 되면 선망의 눈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친구들을 바라봐야 했다. 

‘사이키(사이비 나이키)’라고 불리는 짝퉁도 나왔다. 부모들은 시장표 운동화의 열 배가량 되는 가격의 터무니없음을 따지곤 했지만 한번 ‘필’이 꽂힌 애들의 귀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나이키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 이상이었다. 

많은 세월이 지났고 나이키 운동화는 예전의 ‘지위’를 잃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나이키 운동화’가 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수년 전 대기업 임원이 되자마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샀다. 그때도 ‘이미 가격이 많이 올랐다’거나 ‘강남의 다른 아파트보다 너무 많이 비싸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돈 몇억 원 차이는 문제가 안 됐다. 그에게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단순한 주택이 아니었다. 일종의 신분의 상징이었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를 갖고 싶어 하는 욕구의 근저에는 상대적으로 나은 교육 교통 문화 환경 외에 이런 심리도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비상식적으로 비칠 수 있는 이런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강남 아파트 가격의 ‘비상식적인’ 상승도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강남 아파트 값은 이만큼 내려야 상식에 맞다’고 강요하는 부동산 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상식에는 맞을지 몰라도 인간 심리에 반하고, 이에 직결된 시장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골프장 회원권이 10억 원이 넘는 ‘비상식’도 마찬가지다. 그게 바로 시장이다. 

나이키 운동화는 비슷한 품질의 한국제와 외제 운동화가 시장에 퍼지면서 그 ‘지위’를 잃었다. 강남도 ‘비슷한 품질’의 주거 타운이 양산돼야 오늘날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다. 누구나 아는 이런 시장원리를 도외시한 정책은 아무리 제2, 제3의 8·31 조치가 나와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이키 운동화가 뭔지 모르는 어른들이 많았던 시절에 이미 나이키를 신은 노 대통령이 이런 단순한 이치를 진정 모르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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