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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고영주 전 서울남부지검장이 쓴 기고문 '공안검사를 적대시하는 정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1일 발표된 ‘검찰 고위간부인사’에서 공안 검사들이 또다시 홀대를 받자 “해도 너무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인 필자는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은 후배 공안검사들이 겪을 좌절감과 심적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안타깝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보면 공안검사들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시각이 이번만큼 따뜻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공안검사들은 국가를 생각하고,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를 위해 헌신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로부터 오해와 비난을 받아왔으며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아 왔다.
1997년에 제5기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후 어느 TV방송 대담프로에 출연했다가 “그동안 공안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사회자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변했었다.
“공안검사는 일반 국민들보다 너무 일찍 국가·사회의 위험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어, 국민적 공감대가 채 형성되기 전에 대처하다 보니, 공안검찰의 조치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얻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또한 ‘공안검사의 비애’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 부산지검에서 ‘대학생들의 좌경의식화 학습사건’을 수사하면서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대학가에서 이런 속도로 의식화 학습이 진행되면, 5~6년 안에 모든 대학이 붉게 물들 것이고, 대한민국이 적화되는 것도 시간문제가 아닌가. 군사정권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공산주의를 대안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는 등의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상황인식은 필자로 하여금 좀 더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공안활동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 길이 될 것인지는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공안 검찰은 대학생들의 좌경의식화 학습 사실을 외부에 공표할 수가 없었다. “비록 일부이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공산주의를 지향하고, 북한을 동경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에서 얼마나 기세를 올리겠는가”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렇게 1년여를 쉬쉬하던 중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방화와 동시에 살포된 유인물에는 “남한은 북침준비를 완료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취지의 문구가 들어 있었다.
언론에 유인물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 마당이라, 검찰로서는 그런 터무니없는 내용이 기재된 경위와 좌경의식화 학습 실태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국민들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그럴 리가 없다. 검찰이 순진한 대학생들을 상대로 용공조작을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 당시 미국 유학 중인 한 친구는 “용공조작까지 하면서 검사 하느냐”는 편지를 보냈고, 의사 선배는 ‘절교선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오해는 개인적으로는 좌경화 실태가 널리 알려진 1987년에야 풀릴 수 있었다.
80년대 좌경의식화 학습을 받은 학생들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주도 세력이 되었고, 사회도 엄청나게 변질되었다. 민중사관에 의한 과거사 재단, 민중교육의 용어만 위장한 이른바 ‘참 교육’의 확산, 상위 2%는 괴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치이념 추구 등으로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최근 들어 국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는 듯하니 이제는 과거 공안검사들이 용공조작을 했었다는 오해를 풀어주실 것을 기대해 본다. 현 정권도 공안검사를 적대시하는 솔직한 이유를 밝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