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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치부 차장대우가 쓴 '권력의 문고리 쥔 386 참모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에서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언론은 우선 백악관 사무실 배치부터 점검한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가 있는 서관(西館·웨스트 윙)에 사무실을 갖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뉴스의 초점이다. 일단 대통령과 한 건물을 쓰게되면, ‘실세’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백악관 실무자들이 사용하는 건물은, 웨스트 윙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 정도의 차이를 놓고 마치 권력의 서열을 매기듯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대통령과 가까울수록 대통령에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대통령의 시간과 국정 아젠다(과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권력도 커진다고 보기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의 실세는 역시 청와대의 386참모들이다. 노 대통령은 매일 아침 386참모들로부터 그날의 주요 현안과 일정을 보고 받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청와대측은 이들이 맡은 일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백악관에도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 실무진이 있지만, 미국 대통령이 이들을 ‘보고 창구’로 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무자가 대통령의 눈과 귀까지 차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청와대 386참모들은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거의 매일 열리는 ‘정무(政務)점검회의’ 멤버이기도 하다. 이 회의는 바깥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모임이다. 참석자는 청와대 내 정보와 정무 분야를 실무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386참모 10여명이다. 여기서 주요 현안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이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86참모들이 권력의 문고리를 틀어쥐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청와대 386은 대개, 선거 참모에서 국정(國政) 참모로 변신했다. 대부분 80년대 운동권 출신이고, 운동권이 퇴조를 보이기 시작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통해 성장한 인물들이다. 거리의 투사 출신인 이들에게 국정 운영은 매일 새로운 경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들도 선거 참모를 국정 운영에 중용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각종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칼 로브 백악관 부실장이 대표적인 예다. 지금은 미국 ABC 방송의 간판 언론인으로 변신한 조지 스테파노플러스는, 미국판 386이라고 할 수 있다. 클린턴 후보의 대선운동 홍보 책임자에서, 93년 백악관 공보국장으로 발탁될 때, 그는 32세였다. 워싱턴 정가에선 그를 클린턴 부부에 이어 ‘넘버 3’라고 했다. 클린턴의 젊은 참모들은 워싱턴의 이단아들이었다. 워싱턴포스트지(紙) 주필을 지낸 멕 그린필드가 “젊은 얼간이들(junior twits)”이라고 성토했을 정도다. 클린턴도 이들을 “나를 대통령에 당선시켜 준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면서, 점차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들은 하나 둘 백악관을 떠났다. 그 자리는, 클린턴 측근들이 ‘기득권층’이라고 불렀던 베테랑 전문가들로 채워졌다. 이런 모드 전환을 통해 클린턴은 96년 재집권에 성공했고, 20세기 후반 최장(最長)의 경제호황을 이끈 대통령으로 평가 받을 수 있게 됐다.
오는 25일로 취임 3주년을 맞는 노 대통령은 여전히 386 모드를 고집하고 있다. 386참모들의 보직을 바꿔가면서 계속 돌려쓰고 있다. 클린턴 집권 초기, 미국 언론에선 ‘혼란(mess)’이란 표현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껏 이 정권도 셀 수 없는 ‘혼란’을 스스로 야기해 왔고, 그 중심에 386 참모들이 있다. ‘386 책임론’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