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문창극칼럼'란에 이 신문 문창극 주필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이 세금을 더 걷자고 제안했다. 우리나라는 양극화가 문제인데 이를 고치려면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보통사람들은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더 내면 되겠지…"라며 "나는 아니야"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세금을 내야 할 층은 기업과 월급쟁이들이다. 월급을 타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월급에서 10만원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잘 안다. 월급봉투가 10만원만 늘어도 뿌듯하다. 쥐꼬리만 하지만 그 돈을 요리조리 이용해 재산이 생겨난다. 바로 그 월급봉투에서 세금을 더 떼자는 것이다. 

    돈을 애써 벌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모른다. 이 나라에서 돈의 가치를 제일 모르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나 힘 있는 관리가 아닐까. 정치 한다며 남의 돈 끌어다 펑펑 쓰고, 나랏일 한다며 엄청난 예산을 재단하니 돈 버는 어려움을 알 리 없다. 부도를 막기 위해 매일 피를 말리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경험을 하루만 했어도, 10만원 오른 월급 봉투를 받고 기쁨을 느껴 봤다면 그렇게 쉽게 "세금을 더 걷어야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의 호주머니를 내 것처럼 여기며 대신 살림 살아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바로 사회주의.평등이상주의자들이다. 

    대통령은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 그만큼 개인의 책임은 약해진다. 내가 지금 못사는 것이 나의 책임이 아니라 양극화 때문이니 사회가,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사회적 책임을 하자면 돈이 드니 세금을 더 걷고, 그 돈을 쓰기 위해 정부는 더 커진다. 버는 일보다 쓰는 일에 골몰해진다. 이것이 바로 좌파정부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정부가 좌파정부가 아니라고 하니 헷갈린다. 

    결국은 두 길뿐이다. 사회적 책임이냐, 개인의 책임이냐다. 우리 속담에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있다. 잘살고 못사는 일은 각 개인에 달려 있다는 말일 것이다. 국가가 나선다고 가난한 사람이 결코 부자는 안 된다. 그렇다 하여 사회적 책임을 무시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회적 책임은 어디까지나 보조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다 보면 같이 잘살자던 일이 같이 못살게 되고 만다. 세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월급쟁이들의 봉투가 가벼워지고 기업은 이익이 준다는 얘기다. 개인은 쓸 돈이 적어지고 기업은 문을 닫거나 세금이 적은 나라로 피해 간다. 지난해 몇 조원의 세금이 덜 걷힌 것도 바로 세금을 낼 기업들이 해외로 나갔거나 월급받는 사람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어도 세금 낼 사람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편하게 놀고먹고 싶은 게 본성이다. 같이 잘살자는 말이 열심히 일을 안 해도 남의 덕에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돼서는 안 된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의료비.교육비.실업수당.생활비까지 나라가 다 대준다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게으른 사람이 많은 나라와 부지런한 사람이 많은 나라 중 누가 더 잘살겠는가. 결론은 뻔하다. 

    같이 잘살자는 말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수준이 낮을수록, 미개한 나라일수록 이런 말에 미혹되는 사람이 많다.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 말은 더욱 위력을 떨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더불어 발전한다고들 믿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히려 자본주의를 허물 수도 있다. 민주주의는 표가 결정한다. 표를 많이 얻는 사람이 정권을 갖는다. 내가 노력해서 살겠다는 사람보다 남의 덕에 살아 보겠다는 사람이 더 늘어나면 민주주의의 방법으로 자본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 

    이 정권은 양극화를 자주 얘기한다. 못사는 사람이 많아져 걱정이라고 한다. 그들을 위해 세금을 더 걷자고 한다. 한 표를 던지면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는데 표를 아낄 사람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권력을 위탁하는 대신 복지를 얻자는 유혹에 빠진다. 그 복지가 잠시뿐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포퓰리스트는 그러한 표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는다. 다음 대통령 선거는 이 문제로 가파른 전선이 형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