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보수, 아직 멀었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오늘 한국사회의 보수는 안이하고, 때로는 비겁하다. 한나라당도, 이른바 보수 논객들도, 심지어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한다는 인물들도 오십 보 백 보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을 헤매고 열린우리당이 죽을 쑤고 있으니 다음 정권은 저절로 주머니에 굴러들어올 것처럼 여긴다. 요즘 한나라당에서는 두 번 대선에서 패배했을 때의 긴장감과 절박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 정권 초기나 2004년 17대 총선 직후에는 패배의식에 젖어 꼴불견이더니, 지금은 박근혜 대표나 이명박 서울시장 중에 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이길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낙관론에 젖어 있다.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최근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술에 취해 보수 논객을 비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물론 욕설까지 동원된 그의 발언은 부적절했다. 그렇지만 곱씹어 볼 대목도 있다. 그의 말처럼 대통령을 '조롱'하지 않았는지, 대통령을 '시정잡배'에 비유하고 현 정권을 '친북정권'으로 손쉽게 규정하지 않았는지, 정권 타도를 선동한 글은 없었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대통령이 일부 신문을 거칠게 공격한다고 해서 눈높이를 거기에 맞춰 대통령을 마구 몰아세운 언론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이 나라를 망치는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어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그래서 그 결과 어떻게 됐는가. 천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공범 역할을 했을 뿐이다. 지식인과 언론의 비판은 선전선동이 아니다. 정제되고 차분해야 한다. 

    천 장관은 발언이 문제되자 "공직자로서 정제되지 않은 표현으로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황우석씨의 줄기세포 사건 와중에 무조건 황씨의 편을 들던 소위 보수 논객들 중에 제대로 사과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을 역모로 몰아붙인 것에 비유해 황씨의 '수난'을 안타까워하고, 황씨를 과잉 지원한 정부와 대통령에 대해 오히려 'MBC PD수첩을 응원한다'고 비난하고, 세계 석학들이 인정한 연구를 가짜라고 생각한다며 언론인의 '무지'를 비웃었던 그들이다. 

    그들은 현 정권과 진보, 또 MBC를 공격할 소재로서 황씨를 무조건 두둔한 게 아니었던가. 혹은 지식인으로서 '국익'이란 말에 현혹돼 사실과 진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섣불리 황씨의 손을 들어준 건 아니었던가. 잘못에 대해 반성이나 사과 한마디 없고, 현란한 논리를 동원해 변명이나 한다면 지식인임을 포기한 것이다. 양식이 있다면 당분간 절필하는 모습이라도 보였어야 했다. 

    보수를 표방한 정당이 무사안일에 젖어 있고, 보수 논객은 지식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세조차 갖추지 못했다. 보수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그런 수준이라면 희망이 없다. 현재의 진보가 2류라고 욕하지 말라. 보수는 3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저변도 결코 두텁지 않다. 현 정권에 몸담은 운동권 세력에 실망한 진보 진영은 이미 진보를 '지속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사회작동 원리로 만들기 위해 곳곳에서 싱크탱크를 출범시키고 있다. 이에 비해 '뉴라이트'는 어떤가. 몇몇 명망가에 의존하고, 철학적.사상적 기반을 구축하기보다 행동과 이벤트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보수의 싱크탱크 역할보다 차기 대선과 총선이나 넘보는 것으로 비친다. 

    정치권 밖에 있는 보수 성향 인사 중에는 다음 대선도 비관적으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지금의 보수가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과 철학적 기반이 얕은 데다 도덕성에서도 확신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수는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