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중앙시평'란에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쓴 '중앙시평'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새해 벽두에 인사를 다니는 것이 두려워졌다. 잘못하다가는 벼락을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신년 덕담의 와중에 정치 문제가 거론되면, 급기야 언성이 높아지고 서로 얼굴을 붉히고 헤어지기 쉽다. 한국 경제.사회 발전의 눈부신 성과를 혼탁한 정치판과 정치문화가 갉아먹은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왜 대통령과 집권여당 사이에 저런 파열음이 나야 하는지, 왜 거대 야당이 사학법 개정 때문에 추운 겨울의 칼바람을 맞으며 장외집회를 해야 하는지, 왜 언론과 정치권이 2년이나 남은 대선을 위해 대권 주자들의 행보에 이리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지, 국민에게는 이 모든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이제 국민은 정치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일은 이런 정치권의 습관적인 쟁투가 국민까지 이분법적으로 갈라놓고 있는 것이다. 과거사 청산에서부터 사학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해당 사안을 해결하는 데는 찬성과 반대의 양 극단 외에 현안을 조정할 수 있는 다양한 중간적 해결방안이 있다. 그러나 이제 국민조차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찬성-반대의 이분법이라는 덫에 빠지고 있다. 

    이런 양분법을 가속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매체들이다. 나는 요즈음 우리 사회는 두 부류의 사람들, 즉 인쇄매체를 읽는 집단과 온라인 등을 통한 정보에 익숙한 집단으로 나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양자는 습득하는 정보의 내용이 다르고, 그러하니 사고방식과 행동양태도 다르다. 세대차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우리 사회만이 겪는 게 아니기에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절망감을 느끼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서로 달리 생각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객관적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격앙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불편한 사회 분위기의 선두에 여론을 주도하는 지식인층이 서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북한이 도사리고 있는 분단사회에서 사실에 대한 객관성을 완전히 합의하기란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여론 주도층의 사실에 대한 자의적 해석은 때로는 점입가경 수준이다. 

    이런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서로 간에 보다 솔직한 대화와 소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갈등해소와 관용교육' 혹은 평화교육이 강조하듯이 '적극적인 청취(active listening)'는 소통을 위한 주요한 기술이고, 이를 통해 최소한의 객관적인 사실을 서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훈련과정도 필요하다. 사립학교법에서부터 국가보안법 개정에 이르기까지 예민한 사안들에 대해 개인이나 정당의 입장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안별 당파성이 보수-진보, 혹은 친노-반노의 이분법으로 반드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안별 입장 차이를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풀어간다면 대한민국은 이렇게 바글바글 끓을 필요가 없을 것이며, 국민이 이렇게 개탄하고 불안해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이제 겨우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한 힘든 걸음을 내딛고 있다. 민주주의의 성과는 서구의 역사에서도 오랜 세월과 시행착오를 통해 가능했다. 이제 우리는 인내심과 함께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과정(process)의 중요성을 지켜내야 한다. 2006년에는 국민 모두 소모적인 쟁투를 줄이고, 인내심과 함께 소통과 합의의 사회를 열어가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