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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 시인이 쓴 시론 '2006 신(新) 오적가(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올해 신수를 보니 어변성룡 조화불측이라. 이무기가 변신하여 용이 되니, 그 조화가 무궁무진하구나. 수만청강 어유심수라.
강에 맑은 물 가득 차매 고기가 깊은 물에서 노니는 운세라 식록이 무궁무진하며 재물 높이 쌓이니 단군 이래 이런 태평성대가 없겠구나 했는데, 나라 안에 괴이쩍고 요사스러운 자 두엇이 국사를 구정물처럼 흐린다니, 내 한마디 말 안 할 수가 없구나.
누런 꼬리 아홉 달린 황모(黃貌)가 줄기세포를 갖고 마술을 부려 천문학적 혈세를 꿀꺽하고 사이온수(四夷溫水)라는 잡지에 발표한 논문은 날조된 것이요, 키우라는 줄기세포는 없고 실험실에는 거짓과 기만이라는 호박줄기만 무성하게 키워 놓아 백성들 놀라 자빠졌더라.
황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윤모(尹貌)라는 재주 좋은 원숭이 비슷한 짐승이 또 나타나 장안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이들을 제 집 강아지 데리고 놀듯 놀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더라. 이놈 호는 거물(巨物)이요, 성씨는 부(富)씨요, 이름은 로거(勞去)라. 사람들이 쓰기는 그렇게 쓰되 읽기는 거물 브로커라고 읽었더라.
이놈 손에서 안 되는 일 없고 이놈 뒤에 줄 서서 손해 보는 자 없었으니, 이 거물 부로거(富勞去) 선생의 명성과 은혜가 땅을 덮고 하늘을 찔렀더라. 이놈이 벌인 작태를 잠시 잠깐 들여다보았더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더라.
이놈과 놀아난 자들 낯짝 좀 보자꾸나, 낯짝 내밀어라 ! 오호라, 옛날 옛적에도 오적(五賊)이 있었는데 그 오적 흠모하고 그 행적마저 흉내내는 강호의 변호사(便胡使) 판검사(販劍使) 고관대작(膏冠貸爵) 국해의원(國害疑猿) 장성(醬猩) 무리들이구나 ! 윤모(尹貌)가 이들과 성님 아우 하며 룸살롱으로 골프장으로 어울려 다녔는데, 이놈이 부르면 자다가도 달려나와 유착관계 과시하고 그동안 돈 못 써 환장이라도 했던지 기억원 기천만원 큰돈 작은 돈 다 갖다 바쳤더라.
이놈이 근엄한 총리와는 골프 치고 안면 트고, 유력 국해의원(國害疑猿)들과는 후원금 찔러주며 인맥 만들고, 장성(醬猩)들과는 부대회식에 돼지 기백 마리 헌상하며 형님 아우 삼고, 어절씨구 도박판 벌여 거액 판돈 잃어주어 환심 사고, 어절씨구 그렇게 정(政)·관(官)·군(軍)·검(檢)·경(警)·법원 인사 수백 명과 고래심줄보다 더 질긴 연줄 만들어 재주를 피우는데, 막힌 것 뚫어주고 엉킨 것 풀어주니 나라 안의 송사(訟事), 진급(進級), 이권(利權)이 다 이놈의 손아귀에 있었더라.
권세와 재물에 혈안이 된 자들을 제 손아귀에 넣고 오물락조물락 떡고물 주무르듯 주무르고, 내 것은 당연히 내 것이요, 네 것도 내 것인 양하며 처먹고 싸댄 똥 구린내가 만 리까지 진동하는데, 검경(檢警)은 잿밥 다툼에만 바빴던 탓인지 한통속으로 놀아나느라 정신을 쏙 빼놓았던지 뒷짐지고 나 몰라라 했더라.
술수가 나날이 늘어 간이 배 밖에 나온 듯 말하고 행동하는 이놈이 실상은 고교 중퇴에다 육군 하사 출신이라는데, 신오적 무리들과 어울릴 때는 명문대학 출신에다 보안사 장교 출신이라고 사기를 쳐도 다 속아 넘어가고, 자유자재하는 이놈 세 치 혀에 간 빼주고 쓸개 빼주고도 입 한번 뻥끗 못했더라.
이 원숭이 빼다박은 한 놈 때문에 배움은 모자라도 나라 세금 속이는 일 없고 수족 부지런히 놀려 제 식구 부양하는 선량한 이들, 하사 아래 병장 출신이라도 형제간에 우애 깊고 갑근세 꼬박꼬박 내고 자식들 잘 키우는 이들을 공연히 욕먹게 하였더라.
이놈 본시 정체가 세운상가 기름장순가 뭔가였다는데 그 뒤 행적은 모호하고 이상야릇 신출귀몰하고 명문 출신 권력 군자 사칭하며 다녔더니, 돈 쏟아지고 권세 쏟아졌더라. 옛말에 이르기를 짖는 개는 여위고 먹는 개는 살찐다고 하였는데, 옛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더라. 담 넘는 도둑 보고 짖은 놈은 억울하게 몽둥이질당하고 이놈 저놈 던져주는 뇌물 덥석덥석 물어 삼킨 놈은 잘 먹어 혈색 좋고 신수만 훤하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