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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포럼'란에 미국 조지메이슨대 노영찬 교수(종교학 전공)가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애국심(愛國心)과 민족주의(民族主義)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엄격히 구분되는 개념이다. 민족을 궁극적 가치의 기준으로 삼을 때 민족지상주의(民族至上主義)로 돼 버린다. 민족지상주의는 민족이라는 개념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며 ‘민족’을 절대화하고 우상화시켜 버린다.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민족을 절대화시키는 맹목적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민족주의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준다. 국가가 위기를 당할 때 국민에게 구심점을 마련해 주고 국민의 집단적 정체성을 찾게 해주며 민족의 전통을 전승해 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역사 가운데서도 가까이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우리의 말과 얼과 전통을 다시 살리기 위한 운동이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민족에 대한 의식은 외부로부터 위협 받을 때만 생기는 게 아니라, 때로는 한 국가나 민족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집단의식과 정체성을 다시금 새롭게 정립해 보려는 의도에서 내부적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한국 역시 급성장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두 형태의 ‘식민지’의 탈출로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 하나는 과거로부터의 탈출, 곧 일본의 식민지적인 사고와 역사관과 세계관으로부터의 탈출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의 지배적 세력인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즉, 과거사를 새롭게 정리하는 역사의 ‘숙정(肅正)’으로 나타나고, 우리 민족의 독립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반미’라는 국민정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 측면의 부정을 통해서 ‘민족적’ 주체나 자주성을 찾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부정적인 관계에서 이해해 왔던 북한을 ‘민족 공동체’라는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모습으로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찾기 시작했다. ‘둘의 부정과 하나의 긍정’이라는 수식으로 나타나는 한국의 민족주의는 결국 ‘한민족’이라는 공동체가 우리의 최상의 가치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민족’ 제일이라는 이념을 내세웠던 실패 사례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나치 독일의 독일 지상주의가 가져온 비극, 중국의 마오쩌둥, 베트남의 호치민, 북한의 김일성이 가져온 실패다. 우리는 민족보다 더 높은 이상과 가치, 즉 하늘이 부여한 기본적 인간의 자유와 권리와 존엄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인간의 이상과 가치가 동족이라는 가치보다 더 위대함을 인정했기 때문에 동족 간의 전쟁까지도 치르지 않았는가? 한국전쟁을 단순히 외부 세력에 의해서 일어난 전쟁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한 자세다. 한국전쟁을 내면적으로 이해하면 결국 한 민족이 두 가지 이념, 즉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대결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단순한 국토의 분단이 아니었다.
참애국은 바로 민족을 절대시하는 자기 절대화의 위험성을 보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판정신이 애국정신이다. 나치 독일의 말기에 독일의 애국자이며 순교자였던 본 훼퍼라는 신학자는 독일 민족의 절대화를 바라보면서 자기는 이러한 독일이 멸망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우리의 애국심이 어떠한 수학 등식이나 코드에 맞아야만 되고 여기에 맞지 않으면 반민족으로 규탄하는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 한국이 맞은 큰 과제는 우리가 이러한 맹목적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