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위대도 명찰 부착해라.

    전경과 의경이 시위를 진압할 때 명찰을 부착하도록 하는 방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시위대가 시위진압에 나서는 전경과 의경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나라는 이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점점 기발한 첨단의 발상으로 경찰 공권력이 스스로 목을 죄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경찰청이 지난 15일 밝힌 ‘집회시위 안전관리 개선방안’은 한마디로 시민단체의 요구를 수용했다기 보다는 시민단체의 요구에 굴복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집회시위 안전관리 개선방안’에 의하면 시위진압경찰이 시위대를 향하여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시위 진압복에 명찰을 부착한다는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방안을 발표했다. 공권력이 절제되게 행사되기 위해서 전·의경이 아닌 직업 경찰관으로 시위진압 전담 중대를 편성해서 시범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에 묻는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절제된 공권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폭력시위대가 폭력을 휘두르며 쇠창, 죽창으로 마구 찔러 대고 방화를 하는데 공권력이 무엇을 어떻게 절제한다는 말인가. 왜 경찰은 이상한 연구만하고 이상한 방안만을 만들어 스스로 목을 조이는 어리석고 정당하지 못한 부당한 규칙을 만들려고 하는가.

    이것이 정권에 대한 아부인가. 아니면 폭력시위대에 대한 아부인가. 아니면 전천후로 폭력시위대의 제물(祭物)이 되겠다는 것인가.

    세상에 민주노총과 극소수 일부 시민단체가 공권력을 향하여 명찰을 부착하라고 요구한 나라가 어디 있나. 사회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정당한 방어와 진압을 하는 행동이야말로 바로 공권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경찰은 왜 점점 이상한 곳으로 지혜를 짜내려고 하는가.

    폭력시위대가 폭력을 진압하는 전·의경의 이름을 알 수 있도록 명찰을 부착하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폭력시위대를 진압하는 전·의경의 이름을 알고 난 후 폭력시위대의 이름으로 집단 소송을 하겠다는 말인가. 경찰은 곧 공권력 자체를 포기하려고 하고 있나. 어떻게 발상한다는 것이 고작해야 전·의경 명찰 부착이란 말이냐. 

    앞으로 경찰이 어떻게 폭력시위대나 폭력배를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경찰이 폭력시위대나 폭력배에게 매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를 자청하고 있는 것인가.

    시위를 할 때 각목이나 죽창이나 쇠창을 쓰거나, 방화를 한 자는 법정 최고형으로 다룰 수 있는 입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오히려 경찰의 방안이 되어야 한다. 공권력에 대항한다는 것은 사회 안전과 질서를 파괴한다는 뜻인데, 이 사회 안전과 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폭도나 폭력배로 지칭할 수 있다. 폭도나 폭력배에게 모든 것을 맡기겠다는 뜻인가.

    결국 시위진압에 나선 전·의경이 폭력시위대의 희생물이 되라는 경찰의 개선 방안은 개선(改善)이 아니고 개악(改惡)이다. 폭력시위대를 편들고 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이번 경찰의 전·의경 명찰패용 방안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공권력의 자살골이다.

    폭력시위대의 희생물이 되기 위해서 자청한 전·의경 명찰패용 문제를 즉각 철회하라. 대한민국의 전·의경이 폭력시위대를 위하여 불의(不義)의 제단에 바쳐지는 속죄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명백하게 진압해야만 사회 안전과 질서가 유지된다는 기초적인 사실을 경찰은 진정 모르고 있는가.

    경찰은 폭력시위대나 폭도를 보호하려하지 말고 사회 안전과 사회질서를 지키는데 만 오직 전념하라. 

    <객원칼러니스트의 갈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