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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4일자 사설 '역발상으로 하산하겠다는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통령이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 초청만찬에서 “나는 역발상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 긴 역사적 관점에서 국민을 상대로 국정을 하는 것이고, 당은 당장의 선거에서 이겨야 하므로 생각이 서로 다르다”고 한 데 대해 “고지를 앞둔 사람의 역발상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이미 산마루에 오른 이의 역발상은 그저 승리자의 몸짓으로 보일 따름이다. 산마루에 올라 하늘의 뜻을 헤아려 본 이는 그저 겸손하게 내려갈 길을 재촉하는 모습이 미덥다”고 했다.
대통령은 여당 사람들이 ‘1·2 개각’에 대해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말하자 ‘남들과 반대로 생각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의 뜻을 당장 눈앞의 선거에 집착하는 정당 사람들이 어찌 알겠느냐는 취지로 뭉개 버렸다. 대통령은 또 자신의 뜻이 국민 여론과 엇박자가 나면 “긴 역사적 관점에서 국정을 펴는 대통령으로서 국민이 일시적으로 잘못 생각할 때는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라고 할 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대통령은 지난 연초부터 틈날 때마다 공식석상에서 조선시대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자신은 당장의 민심에 신경 쓰지 않고 역사와의 대화를 통해 국정의 방향을 잡겠다는 심오한 철학을 피력한 듯하다. 대통령은 또 신년 인사회에서 “서로 다른 뜻을 존중하면서 역지사지하는 지혜를 발휘하면 좋겠다”고 덕담을 했었다. 이 말 역시 “나는 역발상을 할 테니 그런 내 생각에 여러분의 생각을 맞춰달라”는 일방통행식 역지사지의 뜻이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편리한 사고 방식이다. 국민이 자기를 지지해 줄 때는 민심이 곧 천심이라면서, 국민이 자기와 엇나가면 국민도 잘못 생각할 때가 있다고 밀쳐 버리면, 대통령은 자신의 모습과 행적을 어느 거울에 비춰보고 바로 잡을 것인가. 그리고 대통령 본인은 역사적 긴 안목으로 길게 보고, 당은 당장의 잇속이나 챙기는 근시안적 집단이라고 비하해도 되는 것인가. 이 전 의장 말대로 산마루에 올라 하늘 뜻을 헤아렸으면 이제 겸손히 산을 내려갈 만도 하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