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 '백화종 칼럼'란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노무현, 유시민, 드골'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기자 세대의 어린이들에게 무지갯빛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건 책이었다. 그 중에서도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인격이 형성되는 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역시 위인전이 아니었나 싶다. 역경을 이긴 위인들의 얘기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어 나도 커서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돼야겠다고 다짐 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무뎌져 위인전을 읽어도 크게 감동하는 일이 드물게 됐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그 연세에도 여전히 책에서 감동을 받고, 위인전을 통해 꿈을 꾸며 용기를 충전하는 느낌이다. 공·사석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극찬을 곁들여 특정 도서들을 권장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들을 정부요직에 기용한 것이 그걸 말해준다. 예컨대 ‘21세기 한국 정치 경제 모델’을 쓴 윤영관 교수를 외교통상부장관에, ‘정부 개혁의 비전과 전략’을 쓴 윤성식 교수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에, ‘변화를 두려워하면 1등은 없다’를 쓴 오영교 코트라 사장을 행정자치부장관에,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쓴 외교부 이주흠 심의관을 리더십 비서관으로 기용한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위의 도서들 가운데 ‘드골의 리더십과 지도자론’을 다시 꺼내 봤다. 연전에 책을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논쟁을 통해 정치적으로 성장하고, 미국을 비아냥대면서 위대한 프랑스를 외쳐 국민통합을 시도했다는 등 그 책에 소개된 드골의 정치 행태와 노 대통령의 그것 사이에 유사점들이 많다고 느꼈었다. 그 책을 다시 꺼낸 것은 여당 내에서조차 반대가 심했던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지명 강행이 드골의 인사 스타일과 연관성은 없을까 싶어서였다.

    책은 드골이 사람을 고를 때 자신을 신뢰하고 신념을 같이 하는가, 개성이 있어 뜻을 일관하는가, 문제의 본질을 신속·단순·명쾌하게 파악하는가, 주의가 깊어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기다릴 줄 아는가 등의 기준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여기서 신뢰와 신념을 충성심과 코드라는 말로 바꾼다면 노 대통령과 유 의원 사이의 그것들이야 의심할 여지가 없다. 개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 의원이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이고, 유 의원이 문제의 본질을 신속·명쾌하게 파악한다는 것 역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이렇게 보면 드골과 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사이엔 여러 닮은 점들이 있는 것 같다. 그게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노 대통령이 책 등을 통해 드골에게서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혹 드골에게서 배웠다 해도 그것은 노 대통령이 아직도 책을 통해 감동을 받고 꿈을 꿀 만큼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징표로서 부러움을 살 일일지언정 흉잡힐 일은 아니다.

    다만 드골의 인사 기준 중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기다릴 줄 아는가의 항목이 유 의원과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으며, 유시민 입각 반대론자들의 주된 불복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드골의…’ 책에 안 나와서 잘 모르겠는데 드골도 일반인의 정서와 안 맞아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의 반대가 만만치 않은 사람을 입각시킨 일이 있는지, 그럴 경우 그런 일들이 권력누수현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는지 궁금하다. 

    노 대통령은 링컨이나 드골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신념과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위업을 이룬 것으로 평가하고, 자신도 그 반열에 서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여론에 쉽게 굴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신념을 관철하려는 건 정치 지도자가 꼭 갖춰야 할 큰 덕목들 중 하나다. 다만 지도자가 옳다고 믿는 신념들 중엔 그렇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으며, 옳지 않은 신념을 밀고 나갈 경우 국가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다각적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 또 옳은 신념이라 해도 안팎의 저항이 거셀 경우 중도에 꺾여 혼란만 초래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노무현이 만난 링컨’에서도 강조한대로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에 두 발을 굳건히 딛는다는 전략을 재음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