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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호모사피엔스만의 전유물이다, 역사라는 이름의 휴먼드라마, 그 영원불멸의 테마는 바로 인간 그 자체이다. 인간정신의 발현, 인간다운 삶의 추구야말로 역사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며, 그 발전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이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야만으로부터 문명으로의 진화를 위해 치른 고통과 희생은 이루 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르네상스의 정신이 신으로부터 인간해방을 실현한 이래, 시민혁명이 절대왕권으로부터 천부인권을 되찾은 것은 그야말로 서막에 불과했다.
20세기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가장 치열하고 처절했던 인권을 향한 투쟁사였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나치즘과 파시즘, 군국 일본이라고 하는 가공할 전체주의와의 열전(hot war)이었던 만큼, 공산주의라고 하는 유물론적 전체주의와의 냉전(cold war)으로 이어진 것 또한 필연이 아닐 수 없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부터 구소련의 붕괴에 이르는 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유주의와 전체주의의 투쟁사로 요약해서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온갖 이름의 전체주의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그 모두가 철두철미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잔혹한 공포의 압제 위에 세워졌다고 하는 점이다. 멀리 히틀러나 스탈린의 예까지도 필요 없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나 코소보에서의 인종청소가 결코 남의 일일 수 없는 남다른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전시도 아닌 평시에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고, 짐승조차 살아나오기 어려운 고문과 살육의 정치범 수용소에 수십만의 생명을 가두고 있는 체제가 바로 우리 곁에, 그것도 수천만의 동족을 볼모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反)김일성, 반(反)김정일이 점 하나 획 하나조차 용납되지 않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예수님이나 부처님마저도 위대한 불멸의 태양아래 있고, 현수막에 내걸린 지도자 동지의 사진조차 결코 비에 젖어서는 안 되는 '절대신성'의 동토(凍土). 일찍이 군국 일본의 천황이 이보다 더한 우상숭배를 누렸을까. 스탈린 모택동 호지명 등 내로라하는 그 어떤 공산주의자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대를 이은 충성'이 급기야 3대째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민주'가 있는지, 여기에 과연 '인민'이 존재하는지, 여기가 과연 '공화국'인지.
단군고조께서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 땅에 나라를 세우신 이래, 어떤 왕조도 어떤 군왕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 공포와 살육으로 얼룩진- 절대야만의 왕조가 21세기의 이 한반도 땅에 존재한다.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 어떤 굴곡과 과오가 있었다 해도 이 전대미문의 민족적 수치와 야만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납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너무나도 명명백백하다.
박정희식 '한국적 민주주의'에 온 몸으로 항거한 일을 생애 유일한 자랑으로 떠벌이는 수구 좌파들이 이 야만왕조에 대해서만큼은 '내재적 접근'을 강변하고 있다. 2000만 인민을 압제의 사슬에 묶어두고 있는 범죄집단을 더할 수 없이 옹호하고 지원하는 자들이, 다른 한 입으로는 소위 미 제국주의와 군사정권과의 야합을 열렬히 비난해 왔다. 야만과 수치를 모르는 정권끼리 야합하여 '민족공조'라는 이름으로 문화민족의 긍지를 한껏 더럽히고 있으니, 이야말로 21세기 문명사회의 조롱거리가 되고도 남음이 있는 반민족공조에 다름 아니다.
소위 민중·민족주의의 사이비 역사관으로 스스로의 정통성과 정체성마저 왜곡 부정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교육까지 하고 있는 세력이 과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설 자격과 능력이 있을까. 민족사상 최악의 전범인 김일성의 시신에 참배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무리들이 보수 일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비난한다면, 이보다 더 가소로운 코미디를 달리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동족의 고통과 절망에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민족끼리'의 사기극이 민족과 문명에 끼칠 죄악과 재앙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병술년 새해에 뜻있는 애국시민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민족의 양심과 명예를 걸고 해야 할 일 하나를 제안하고자 한다. 장래에 어떠한 형태로든 북한정권의 반인권범죄를 반드시 사법의 심판대에 올리겠다고 하는 거족적(擧族的) 결의를 '병술인권선언'으로 이름하여, 세계만방에 밝히자. 그리고 그 말미에 반드시 다음과 같이 '공약삼장'을 새겨두자.
―야만적 반인권 범죄의 주범과 내외 종범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추적하여 최후의 1인까지 단죄한다.
―북한이나 대한민국의 법으로 부족하다면,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에 소추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시효가 없다.이것만이 문화민족으로서의 양심과 정기를 바로 세우고 문명국가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일찍이 군정종식의 기치아래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섰던 DJ가 갈파했다고 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죄악이다."
북한정권의 반인권범죄를 추궁할 때마다 저들과 이곳의 하수인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모범답안이 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천문학적인 국민의 혈세를 퍼부은 '햇볕의 대가'가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
우리의 목표는 군정 종식 정도가 아니라 폭정 종식이다. 전쟁으로 위협하던 군정시대 거짓말쟁이 양치기의 유령을 두려워 할 그 누구도 이제는 없다. 이번 기회에, 「평화주의자」의 탈을 쓰고 7000만 민족을 북한정권의 공갈에 굴종토록 협박하는 무리들에게 분명히 약속해 두자. 최소한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요구에 대해서마저 전쟁으로 답하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면, 민족의 이름뿐만 아니라 문명의 이름으로 기필코 압살되고 말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끊임없이 일관되게 증명해 온 바이다.
고금과 동서의 그 어떤 역사에서도, 노예가 아니고서는 압제의 공갈과 협박에 굴복해서 평화를 얻은 예가 없었고, 그렇게 해서 인권을 쟁취한 예는 더더욱 없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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