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닌언면 '조선 데스크'란에 이 신문 최병묵 정치부차장이 쓴 '군사정권식 사학겁주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개정 사립학교법 문제를 둘러싼 청와대·정부와 사학재단 간 충돌이 8일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일부 사학이 신입생 배정 거부까지 밝혔다가 철회했기 때문이다. 6일 시작된 강(强) 대 강(强) 식 공방은 일단 끝났다. 겉모습만 보면 청와대와 정부의 초강경 방침에 사학이 손을 든 형국이다. 

    그러나 이번 파동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보여준 행태는 결코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6일 일부 사학이 처음 신입생 배정을 거부하자 청와대와 정부에서 회의가 거듭됐다. 휴일인 8일도 예외는 아니다.

    6일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 주재 회의에선 “헌법 질서에 대한 도전” “사학비리 전면조사”(김만수 청와대 대변인) 방침이 발표됐다. 7일에도 “비리사학에 대한 교육부·감사원 합동 감사”(최인호 청와대 부대변인)가 공표됐다. 8일 청와대 회의 역시 주로 사학에 대해 ‘칼’로 다스리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해찬 총리가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관계장관이 총출동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각각 지휘할 수 있는 천정배 법무장관과 오영교 행정자치부장관도 참석했다. 교육부, 감사원으로 모자라 검찰, 경찰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입생 배정 거부를 하는 사학에 대해서는 “재단을 빼앗겠다”는 시사인 셈이다. 다행히 이런 결정들은 사학의 신입생 배정 거부 철회로 현실화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학생들을 볼모로 사학이 정부에 대항하는 것은 분명 적절치 않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에게 피해가 가게 해서는 곤란하다. 문제는 그동안 청와대와 정부가 이런 식으로 대응해도 되느냐다.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동원한 수단이 너무 시대착오적이었다. 폭력적이기까지 했다. ‘말 안들으니 다 까발려(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장시키겠다’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제압하는 데 공권력을 동원하던 시대는 갔다. 그런 시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국민들이 희생했다.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그런 바탕 위에서 현 정부가 출범했다. 현 정부와 여당 고위직에 민주화운동 전력자가 많은 것은 국민들이 그 희생의 가치를 인정한 탓이다.

    문화도 달라졌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의 행태 상당 부분은 과거사 정리 대상이 됐다. 그걸 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들이 모여 대책 회의를 연 것은 5공 때 많이 듣던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연상케 한다. 

    이 회의엔 법무부장관도 참석했다. “검·경을 도구화했던 정부와 뭐가 다르냐”고 할 때 선뜻 답변할 거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어느 정권보다도 더 검찰의 독립성을 강조해왔기에 더욱 그렇다. 

    비리는 사학 비리든 그 누구의 비리든 감사원과 교육부, 검찰, 경찰이 항상 감시해야 한다. 사학이 신입생 배정 거부를 하느냐 안 하느냐와 상관없이 정부가 해야 할 의무다. 이번처럼 사학이 여권에 대든다고 ‘맛 좀 볼래’ 하는 식으로 전면 조사한다는 것은 현 정권이 그렇게 비난하는 구시대에나 있던 일이다. 

    비리 사학은 소수일 것이다. 단지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머지 대다수 사학에까지 공권력을 들이대겠다는 것은 ‘협박’에 가깝다. 

    노무현 대통령은 얼마 전 시위 농민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공권력 행사의 엄중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대국민 사과도 했다. 이렇게 누구를 겁주기 위해 행사하는 공권력은 엄중히 행사되는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