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정옥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가 쓴 '노 대통령 역사공부 다시 하길…'이란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요즘 들어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 역사에 대한 이런저런 발언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언급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시시비비를 떠나 긍정적이다. 근대 이후 낯선 서구의 지식체계에 의존하던 경향성에서 벗어나 친숙한 우리 역사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이끌어내려는 시도는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조선시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우선 휴머니즘에 입각한 평화 공존의 정신이다. 조선왕조는 현재와 가장 가까운 전통시대지만 현대사회와 정반대되는 사회였다. 당대의 최고 가치는 평화와 안정이었다. 조선은 신유학인 성리학을 국교(國敎)로 삼고 그 이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한 나라다. 유교의 근본 정신은 평화 공존의 정신이고 지식을 최고 가치로 삼는 것이다. 남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존재는 오랑캐로 인식하여 사람의 범주에 넣지도 않았다. 

    둘째, 조선은 문치주의(文治主義)의 나라다. 문치주의는 글로써 다스린다는 것이니 오늘날의 지식 기반사회나 다름없다. 책을 통하여 습득한 지식이 사회 운영의 기초였고 ‘박학다식하다’ ‘유식하다’는 말이 인물평에서 최고의 칭찬이었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하루 세 번씩 신하들의 강의에 참석하여 공부해야만 했다. 박학다식한 신하들의 말귀를 제대로 알아듣고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도 그 자신 유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조선 국왕들의 운명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兩亂) 후 조선도 방향 설정에 고민하였지만, 결국 예(禮)를 세워 전후(戰後)의 혼란을 극복하고 사회 정의를 구현하자는 예치(禮治)의 기치 아래 문치주의의 전통을 강화하였다. 조선의 힘은 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붓에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결과였다. 

    셋째, 조선시대는 패도(覇道)정치가 아니라 왕도(王道)정치의 시대다. 패도는 제국주의의 핵심으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힘의 논리이다. 모든 관계를 힘의 유무(有無)로 파악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강자에게는 약하게 처신하는 행위 기준을 말한다. 이야말로 정글의 법칙이므로 인간을 동물로 상정하는 논리이다. 

    왕도란 구성원들을 의리와 명분으로 설득하여 자율성을 높이는 친화적 관계 정립의 준거틀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의 기준은 의리와 명분에 있었다. 의리는 인간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이고, 명분이란 그 이름에 걸맞은 분수이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처리할 때 이 잣대에 맞는지 가늠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이해관계는 그 다음에 따져야 사람 대접을 받는 사회였다. 

    넷째, 인사제도와 기록의 투명성이다. 왕이 밀실에 앉아 마음대로 인사를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되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고금의 진리이다. 어느 자리에 어떤 인물이 적당한지는 공론에 의한 여론수렴 과정을 거쳐 이조전랑(吏曹銓郞)이 올리는 추천 명단을 토대로 검증 과정을 거쳐 왕은 최종 결재의 낙점을 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인사문제는 물론이려니와 왕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기록으로 남겨 투명성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시대 통치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회 통합의 정신이다. 위에서 열거한 장치들은 결국 사회 통합을 위한 것이었다. 편 가르기를 시도하는 신하들을 달래고 때로는 엄중하게 꾸짖기도 하면서 국왕은 끊임없이 사회 통합에 신경을 썼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의 마음 공부가 중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음이 요구되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바꾸지 않는 확실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해야만 공정한 판단으로 신뢰를 받아 통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들에 비추어볼 때 노무현 대통령의 최근 인사나 행태는 그가 자주 언급하는 조선시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사회 통합보다는 대립과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들과 여당까지 반대하는 장관 임명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 등은 조선시대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대통령에게 조선시대 역사를 꼼꼼히 다시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