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이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평민이 군주가 되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사악하고 범죄적인 수단으로 군주에 오르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동료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그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것을 들었다. 군주론은 비정상적 방법으로 군주에 오른 사례를 들면서 그 군주들은 동료 시민을 죽이고, 친구를 배반하며, 체면도 동정심도 종교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군주들은 권력을 장악할 수는 있으나 영광을 획득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권은 2002년 대선 때부터 온갖 사악하고 범죄적인 수단에 의해 권력을 장악했다. 당시 김대업이라는 희대의 사기꾼을 등장시켜 병풍을 일으킨 것이나, 설훈을 통해 20만달러 뇌물수수설을 조작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권력만 장악하면 된다는 정치모리배들의 전형을 우리는 목도한 것이다. 마키아벨리가 설파한대로 이들은 권력은 장악했으나 영광은 고사하고 국민들의 불신 속에 역대정권 중 최악의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주역들은 또다시 2002년 대선에서 써먹었던 수법을 재연하려 하고 있다. 그 중심에 노무현-이해찬-유시민이 있다.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은 ‘사악하고 범죄적인 수단에 의한 권력장악’을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일부에서는 ‘유시민의 대권후보 띄우기’라는 성급한 전망까지 하고 있으나 다른 측면을 주시해 봐야 한다. 그것은 국민연금법 개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2월 마감한 임시국회에서도 야권의 반대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처리되지 않았다.

    일반 국민들은 문제투성이인 국민연금법 개정을 야권에서 왜 반대하는지 이유를 알기 어렵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정치적 이용 가능성 때문이다. 사실 여권에서 국민연금에 대해 이해찬 총리와 유시민 의원만큼 정통한 사람은 없다. 유시민 의원은 이해찬 의원 보좌관 출신이다. 유시민 의원이 보좌관으로 있을 당시 이해찬 의원은 8년 동안을 보건복지위에서 보냈다. 열린우리당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주도한 사람이 유시민 의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마련한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민연금의 정치적 이용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우선 현행 국민연금법은 기금 투자대상을 금융기관예입, 공공부문 투자, 유가증권 매입, 선물거래, 복지사업, 재산취득 등 6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안은 여기에 사회간접자본과 주택사업투자가 추가돼 있다. 또한 기금운용주체가 현재는 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에 위탁하는 체제이나 개정안은 연금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고 공사의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돼 있다. 15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 역시 전적으로 대통령 영향권 안에 들어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법이 정부안대로 추진되면 노정권이 의도하는 선심사업에 마음대로 뿌려질 수밖에 없다. 연금으로 기업의 주식을 대량 매집할 경우 정부의 기업지배 또한 급속하게 진행될 것임은 필지의 사실이다.   

    국민연금은 운용과 관련,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장관도 여권 핵심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바 있다. 김 전장관은 2004년 11월 19일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노무현대통령과 당시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 방어 및 경기부양을 위해 증시 및 부동산투자에 국민연금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주무장관으로서 수용할 수 없다는 반대입장을 강경한 어조로 피력했다. 김 전장관은 “국민연금은 5,000만 국민의 땀의 결정체”라고 전제하고 “국민 여러분께서 땀 흘려서 알토란처럼 적금을 넣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좀더 면밀한 검토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까지 반대여론이 비등한 유시민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입각을 강행하려는 의도는 국민연금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157조 5,837억원에 달한다. 2007년 대선 임박해서는 200조원을 넘나들 것이다. 이런 엄청난 자금이 아무런 견제장치 없이 정권 쌈짓돈 같이 운용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재 정치권은 개정된 정치자금법으로 발목이 단단히 묶여 있다. 따라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자금 마련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무런 경제장치가 없는 눈먼 돈 200조원이 손아귀에 쥐어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사악하고 범죄적인 수단’을 서슴지 않는 이들이 어떻게 이 돈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기용의 숨은 의도에 국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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