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전영기 정치부 차장이 쓴 '중앙포럼' 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공직자 3500여 명을 뽑는 민주주의 축제다.

    이 축제를 통해 차기 대선의 경쟁구도는 좀 더 분명해질 것이다. 구도가 드러나면 2007년 대선 예측은 좀 더 쉬워진다.

    대선 결과가 경쟁구도에 좌우되는 형편은 지난 역사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1987년 민주화 진영은 6.29선언으로 빛나는 승리를 거뒀지만 대선에선 패배했다. 1노-3김(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4자구도 때문이었다. 여권에서 한 명, 야권에선 여러 명이 출마했다. 야권의 분열구도다. 당시 위기를 맞은 여권은 4자구도를 이끌어 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여 성공했다. 김영삼 김대중은 경선을 거부하고 각자 출마했다. 후보 단일화의 실패다. 양김은 경쟁구도에서 이미 노태우한테 지고 들어갔다. 

    그 뒤에도 같은 상황이 법칙처럼 반복됐다. 통합한 쪽은 이기고 분열한 쪽은 지는 법칙이다. 92년 대선의 1여(김영삼)-2야(김대중 정주영) 구도에서 김영삼이 승리했다. 97년의 2여(이회창 이인제)-1야(김대중) 구도는 김대중의 승리였다. 2002년 1여(노무현)-1야(이회창) 구도에선 정몽준과 후보 단일화에 성공한 노무현이 이겼다.

    현재로 돌아와 보자. 지금 시점에서 차기 대선의 경쟁구도는 누가 결정하는가. 박근혜와 이명박이 결정한다. 왜냐하면 여야를 통틀어 이들만이 강력한 정치조직과 광범위하고 확고한 지지층, 독자적으로 정치상황을 만들 능력을 겸비했기 때문이다.

    경쟁구도로만 보면 둘은 87년 양김과 비슷하다. 정권교체라는 공동목표를 위해 후보 단일화 압력을 받고 있는 게 그렇다. 더 비슷한 건 따로 출마해도 홀로 집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각자 갖고 있는 점이다.

    5.31 지방선거는 두 사람의 확신이 교차하는 무대다. 박근혜에겐 유혹이고 이명박에겐 시험이다.

    박근혜는 압승의 유혹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박근혜는 선거불패의 신비한 매력으로 전국의 격전지 유세에 나선다. 한나라당의 압승은 당 대표인 박근혜의 압승이다. 이는 그 뒤의 당이 박근혜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아도 대의원 수에서 6 대 4 정도로 이명박을 앞서고 있다는 박근혜다. 이렇게 되면 2007년 봄 한나라당 경선에서 대선 후보는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은 서울시장이기에 선거법상 지방선거 간여가 금지돼 있다. 손발 묶인 이명박은, 상당한 공천 영향력을 행사하고 화려하게 전국을 누비는 박근혜에게 한나라당이 통째로 넘어가는 게 아니냐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박근혜가 지배하는 한나라당이라면 공정한 대선 경선은 아무래도 어려운 것 아닌가. 입지 좁은 당에 돌아가느니 박근혜보다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국민 직접정치를 해볼까. 지방선거에서 이명박이 빠질 시험은 이런 거다. 

    결국 대선 승리를 위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지 않는 게 좋다는 이상한 논리가 도출된다.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져야 한다→후보 단일화를 위해 둘은 당내 경선에 참여해야 한다→둘의 경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적절한 세력균형 상태여야 한다→당내 세력균형을 위해 한나라당은 지방선거에서 압승하지 않는 게 좋다'는 논리구조다. 

    지방선거의 역설은 2002년에도 있었다. 그해 6월 이회창 대선 후보의 한나라당은 지방선거를 싹쓸이하고 6개월 뒤 대선에서 패배했다. 그때의 역설은 야당의 자만과 여권의 위기감에서 성립했다. 2006년에도 역설이 성립한다면 그건 야당의 분열과 여권의 통합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