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사퇴를 거부했던 허준영 경찰청장이 29일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을 두고 일선 경찰들이 들썩이고 있다. 허 청장의 사퇴를 종용하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압박이 거칠게 이어진데다 국회파행을 막기위한 '희생양'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찰청 홈페이지 등을 통해 경찰들의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농민단체의 거센 반발과 민주노동당의 끈질긴 요구에 청와대와 열린당은 허 청장의 자진사퇴를 종용했다. 열린당 최규성 의원은 27일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대통령까지 사죄한 마당에 경찰청장은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며 촉구하고 사퇴하지않을시 탄핵까지 불사하겠다며 의원모임까지 결성했다. 28일 열린당 의원총회에서는 허 청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주장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오영식 공보부대표는 "(허 청장이) 사퇴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국민에게 책임지는 자세로 보이기 어렵다는 의견이 의총에서 나왔다"고 발표했다.

    열린당으로서는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며 장외투쟁에 나서고 있는 한나라당을 빼고 임시국회를 강행하기 위해서는 등원조건으로 허 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던 민노당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허 청장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했던 청와대도 29일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허 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대학교 강정구 씨 구속수사 여부를 두고 열린당과 상의없이 구속방침을 밝혀 이미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허 청장의 사퇴에 대해 '시민단체들에게 휘둘리는 공권력' '폭력시위를 그냥 두라는 거냐'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경사로 재직중이라는 안길남씨는 "정치권과 각 재야 시민단체의 언론플레이로 인해 공권력의 기둥인 경찰청장이 끝내 맥없이 물러났다"며 "허 청장의 사퇴로 경찰의 큰별이 또 하나 지고 만일"이라고 개탄했다. 유인선씨는 "요즘 뉴스를 보면 가슴속에 끓어오느는 분노가 든다"며 허 청장의 사퇴에 분개했다. 그는 석달전 의경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고 한다.

    의경 기동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김호성씨는 "폭력시위를 진압한 경찰청장이 무슨 죄가 있냐"며 "청장을 나무라는 사람들이 더욱 큰 죄를 짓는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허 청장역시 퇴임하면서 편치 않은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퇴임사에서 "시위농민이 사망하게된 원인은 불법시위에 있기 때문에 경찰청장이 물러날 사안이 아니지만, 통치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 사퇴한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 경찰관의 지위향상 등 경찰 권익보호에 앞장서 경찰조직으로부터 신망을 받고 있는 허 청장은 사표 제출 직후 한동안 집무실에 앉아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