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문창극 논설주간이 쓴 '문창극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간다. 고향에 쓴 추억이 있다 해도 고향 하면 괜히 마음이 끌린다. 어머니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합리를 뛰어넘는 존재, 그런 것이 사람마다 있다. 요즘 이 정부가 북한을 다루는 것을 보면 이 같은 심정이 아닐까 유추해 본다.

    북한이 달러 위폐를 찍는다는 증거를 내밀어도 우리 정부는 "좀 더 확실한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안 믿겠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국회에다 북한이 위폐를 찍는 장소까지 밝힌바 있다. 그런데 왜 이러는 걸까. 북한에 대한 배려 때문이리라. 아무리 그렇지만 범죄까지 감싸려는 것은 합리로서는 이해가 안 간다. 그러니까 북한에 대한 이 정권의 태도는 감정 차원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그렇다면 같은 민족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민족에 대한 사랑이라면 북한 주민의 비참한 인권 상황에 대해 분개함이 옳다. 그러나 그건 또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북한 주민에 대한 사랑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나는 이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북한이라는 체제가 하나의 고향 같은 것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합리로서는 해석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마음, 맥아더 동상을 허물자는 강정구 같은 마음을 이 정권 핵심들은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인연의 끈 때문일 것이다. 가족사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로 남쪽 체제로부터 받은 박해에 대한 반감도 있을 것이다. 이미 그것을 극복하고 정권을 잡았는데도 피해의식은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는 젊은 시절 잘못된 교육이 원인일 수도 있다. 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이 북한에 대한 동경으로 치환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무너졌을 때 통곡했다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공산주의로는 행복하지도, 잘 살지도 못한다고 말해 봐야,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얘기해 봐야 들으려 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로 정향되도록 교육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감싸기가 이런 감정문제가 아니라면 또 다른 현실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북한을 비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정부는 지금 북한카드로 국면전환을 꿈꾸고 있을지 모른다. 지지율이 20% 이하인 상황에선 지방선거고 대선이고 치를 수 없다. DJ가 남북연방제를 꺼내며 방북하겠다는 말도 예사롭지 않다. 깜짝쇼를 벌여 국면을 뒤집겠다는 발상이라면 위험하다. 그것을 국민이 받아들일지 거부할지는 미지수지만 정상회담 연방제 같은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러자면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니 악을 보고도 악이라 말하지 못한다. 

    북한 퍼주기도 이런 저의를 의심할 수 있다. 북한에 왜 할 말을 못하느냐고 물으면 잘못 건드리면 전쟁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우리보다 국력이 30분의 1도 안 돼 이제 전쟁은 없다고 말하면서 전쟁 때문이라니 자가당착이 아닌가. 그러면서 북한의 위험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전적 사고라고 몰아세운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친북의 감정을 어쩌겠는가. 그것이 역사적 유산인 한 그 감정이 하루빨리 치유되기를 바랄 뿐이다. 북한을 감정이 아니라 합리의 대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마음상태가 되어야 한다. 미국은 남북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100년이 걸렸다. 우리도 이런 감정을 씻어내려면 100년이 걸릴지 모른다. 

    문제는 이런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나라를 끌고 갈 때 나라가 어떻게 되겠느냐는 점이다. 사학법만 해도 그렇다. 명목은 사학재단에 외부인사 한두 명을 넣자는 것이지만 본질은 교육 주도권에 대한 다툼이다. 전교조에 교육의 주도권을 주기 위한 것이다. 전교조 교육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러니 사학법과 위폐 사건이 물밑으로는 다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보통국민은 그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끌려간다. 정권을 잡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정권이 집권한 지 3년이 흘렀다. 남은 2년은 끝물이다. 그러나 석양 볕이 더 따갑다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