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김대중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씨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세력이 집권하자마자 그들의 장기집권을 거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웃어넘겼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두 번에 걸쳐 “100년 가는 성공한 정당을 한번 하자”고 했고 이해찬 총리는 2007년 대선에서 재집권을 장담했다. 그러나 엊그제 집권당의 정세균 의장이 구체적으로 ‘최소한 10년 집권’을 내걸었을 때 상황은 심상치 않았다. 이제 그동안 이들이 준비해온 여러 ‘장치’와 ‘무기’들로 미루어 그들의 장담은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게끔 됐기 때문이다.

    집권 연장의 ‘장치’와 ‘무기’는 그들이 이른바 ‘개혁입법’이라고 내세운 4개 법안과 그 부수적 조처들이다. 신문법, 사학법, 과거사법, 국가보안법 폐지가 그것이다. 이들은 보안법 건만 남기고 3개 법안을 성사시켰다. 정세균 의장 발언의 타이밍은 재집권을 위한 준비가 거의 끝나고 이제 시동을 걸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적 바탕을 조성해야 한다. 집권세력의 4개 입법은 바로 기반 조성을 위한 장기적 전략 아래 추진되어온 것이다. 

    이들은 먼저 언론을 장악하는 데 착수해 2004년 신문법부터 만들었다. 다수 매체의 친여화(親與化)에는 성공했으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장악이 여의치 않자 이들을 옥죄고 고립시키고 간접 탄압하는 법을 만들었다. 조선·동아가 끝내 장악되지 않으면 ‘수구’로 몰면 된다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다.

    지난 5월에 통과된 과거사법은 과거사 정리를 명분으로 기득권이나 구(舊)집권세력을 반(反)민족·반국가적 존재로 부각시키는 데 주력할 것이 뻔하다. 이것 역시 정권 연장에 필수적인 바탕이다. 북한의 반(反)인권 상황에는 철저히 침묵해온 인권위도 남쪽의 ‘내 편’ 만들기에 적극 나섰다. 인권위가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만들어 공무원·교사의 정치참여 확대, 쟁의 직권중재 폐지,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들을 권고한 것도 그들 지지세력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기도임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 정기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사학법은 일부 사학의 부조리를 틈타 전교조의 전 교육기관 침투 내지 장악을 노린 것이라는 것이 사학의 공통된 견해다. 선거 연령을 19세로 하향조정해 이미 60만명의 정치참여 인구를 확대해 놓은 집권세력은 더 나아가 ‘전교조 금지 구역’이었던 사학의 빗장을 열고 젊은 세대를 그들의 이념대로 교육시켜 그들의 잠재적 원군(援軍)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내보인 것이다. 종교계의 격심한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수를 둔 저의가 거기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보안법 폐지 문제다. 엊그제 집권당의 한 의원은 내친 김에 보안법 폐지도 밀고 나가자고 말해 저들의 속내를 드러냈지만, 이것이 당장 재집권의 호재(好材)로 작용할 것인지의 판단 여부에 따라 처리 일정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사정에 따라서는 보안법 문제로 색깔 논쟁이 붙으면 일부 지지기반이 이완될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4개 법안의 현실화에 따라 집권세력의 ‘최소한 10년 집권 연장’은 비로소 그 정체를 드러내고 가동을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세균 의장은 집권 명분을 이렇게 내세웠다. 우파세력이 집권하면 ①남북간에 엄청난 긴장이 형성돼 ②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며 ③조세 체제와 부동산 시스템 등은 상위 2%를 위한 것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것이다. 즉 그들의 재집권 전략은 분배에 역점을 둬 기득권 또는 상위권을 공략하고, 선전과 교육을 장악하며, 북한과의 연대를 도모하는 정책에 천착할 것임을 짐작케 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북한 관리를 공공연히 ‘동지’라고 부르고 집권당의 한 의원은 북한을 ‘범죄 정권’이라고 한 미국 대사를 윽박지르며 대미(對美) 단교(斷交)도 불사한다고 나왔다. 일부에서는 헌법의 영토 조항을 고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고, 국정원이 나서서 북한의 달러 지폐 위조를 “사실과 다르다”며 변명하는 지경이다. 곳곳에서 기존과 기본을 뒤엎는 언행들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나라당은 아주 모양새 좋은 ‘들러리’로 현 정권의 정권 연장 기도에 한몫(?)을 해주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그런 야당인데도 주제넘게 차기 권력은 자기들 것인 양 선수 치는 사람들로 난립될 전망이어서 이래저래 집권세력의 ‘10년 집권 연장’은 서서히 자리를 굳혀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