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준화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교육개발원의 의뢰로 지난달 27일에 발표된 평준화-비평준화 지역의 학업성취도 비교 분석 때문이다. 평소 평준화에 찬성해온 사람들은 “평준화 제도는 교육성과, 학생생활, 사회문제 영역에서 비평준화보다 적합한 제도라는 점이 실증적으로 입증됐다”고 반겼다. 또 “고교입시를 부활하면 입시경쟁으로 성적이 올라갈 것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가난한 영재’는 고입 때부터 경쟁시험을 치르든, 추첨배정을 통해 입학하든 3년 간 공부를 통해 성적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불평등의 세대간 대물림은 평준화와 비평준화와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였고, 또한 과외를 할 수 없는 가난한 학생에게 비평준화가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는 비평준화 찬성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론이 된다.

    그러나 반대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우선 이번에 사용된 자료가 대단히 편협하다는 것이다. 즉 평준화 정책을 지지하고 있는 관련기관이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비교해 학력의 추이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준화와 비평준화 효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관계기관이 관련된 자료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무시할 수 없는 지적이다.

    평준화에 대한 실증적 분석의 한계

    반면 이들과는 다른 생각도 있을 수 있다. 평준화와 비평준화에 대한 객관적 연구는 간단하지 않다. 사교육의 강한 역할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에서 평준화와 비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이 학생들의 학업성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업성취에 사교육의 영향력을 배제한 이번 연구는 신뢰도에서 손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중소 도시와 농촌, 대도시 간의 교육 환경에 차이가 나며 교육 환경이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교육 여건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도시 학생들의 학업성취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또 대도시가 대부분 평준화된 지역임을 고려하면 객관적 자료 없이도 평준화된 지역의 학업성취가 높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학업성취도를 가지고 평준화와 비평준화를 비교하는 것은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꿀 때가 되었다. 그동안 평준화와 비평준화에 대한 우리의 논의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평준화되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왜 여러 가지 이유에서 합의를 보기 힘든 교육 문제에 대해 어렵게 합의를 보아 모든 지역에서 동일하게 적용하려고 하는가.

    물론 이 평준화 문제는 국가 차원의 결정 사항이 아니고 지방 교육청의 결정 사항으로 이관되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권과 자율이라는 이름의 정책 때문에 조정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교육청이 문제를 안게 돼 더욱 혼란에 빠지고 있다.

    평준화, 비평준화를 국가 차원이나 지방 차원에서 결정하지 말고 개별학교와 학생이나 학부모의 선택에 맡기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는 대안이다. 나라가 돈을 대는 국공립학교는 국가의 정책에 따라 평준화나 비평준화로 통일해야 한다고 할지라도 사립에 대해서는 국가가 선택권을 돌려줄 수 있다.

    설사 평준화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지금까지 지적되어온 평준화의 문제점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평준화를 시행하면서도 하향평준화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시행해볼 수도 있다. 또 우열반이 아니라 각자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반을 선택하여 수업을 받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열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다. 평준화, 비평준화의 논의를 떠나 학생들이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교육 제도나 방법을 모색하는 데 지혜를 모을 때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