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집터 닦아준 선각자들에게 고마워하자
  • [새 연재] 대한민국 현대사의 올바른 이해<1> 역사 해석의 새로운 기준

    이영훈 (서울대 교수)

    뉴데일리 이승만 연구소는 오늘부터 [대한민국 현대사의 올바른 이해]를 연재합니다.
    이 글은 한국 현대사의 권위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지난 6월부터 국방일보에 게재한 것으로서 국방일보의 협조를 얻어 뉴데일리 인터넷판에 전재합니다. (편집자주)

  • ▲ 이영훈 서울대 교수.ⓒ
    ▲ 이영훈 서울대 교수.ⓒ

    G20 성공신화의 기반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진입했다. 지난해에는 G20 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는데, 한국이 의장국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의 국민총생산과 대외교역량은 세계 12~13위이며, 삶의 질도 영국 등의 오랜 선진국을 제친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세계은행은 앞으로 20년간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6대 국가의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

    세계 곳곳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진출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정치와 경제만이 아니다. 중국·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문화를 동경하는 한류 붐이 식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 같은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48년 8월 15일 나라가 세워질 때 그 기틀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체제로 올바로 잡혔기 때문이다. 기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서는 그 위에 아무리 좋은 집을 지으려 해도 되지 않는 법이다.

    건국기 선각자들의 공적

    폐쇄적인 사회주의체제로 들어선 북한이 오늘날 어떤 지경에 놓여 있는지를 통해 그 점을 잘 알 수 있다. 중국도 마오쩌둥의 급진적 사회주의 노선이 지배한 1976년까지는 혼란과 빈곤의 늪을 헤어날 수 없었다. 중국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개시한 것은 마오쩌둥의 사망 이후 개방적 시장경제체제로 돌아선 뒤부터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자유시장경제야말로 성장의 기본 요건임을 살아 있는 교훈으로 배울 수 있다.

    한국은 일찍부터 그 길로 들어섰기에 오늘날의 큰 성취를 이뤘는데, 그 점에서 나라의 기틀을 올바로 잡은 건국의 선각자들이 역사에 남긴 공적은 실로 크다 하겠다.

    "생겨나서는 안될 나라"

     그럼에도, 오늘날 한국인들은 그들의 현대사 이해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대립을 보인다. 지금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애당초 생겨나서는 안 될 나라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한민국으로 인해 민족의 분단이 초래됐다는 것이다.

    또 대한민국은 거저 생긴 나라라는 주장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이 땅에 새로이 들어오자 친일 반민족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에 붙어 나라 같지 않은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 외에 지금도 대학과 중ㆍ고등학교 역사교실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가지 생각이 있다. 다름 아니라 민족통일이 이뤄지기 전이라면 남이든 북이든 각각의 역사는 불구의 미완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을 괴롭히는 갖가지 크고 작은 갈등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한국 현대사를 둘러싼 이 같은 이해의 대립이 가로놓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겉보기의 화려한 성취에도 현대 한국인들은 깊은 속내에서 적지 않게 분열해 있다. 이러한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고서는 진정 아름다운 선진국을 건설해 가기 어렵다.

    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우수한 병기로 잔뜩 무장하더라도 장병들의 국가관이 해이하다면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무언가 강력한 충격이 주어진다면, 어디선가 큰 갈림길에 봉착한다면, 대한민국은 사상누각처럼 허물어질 수 있다.

    100년전에 도입된 '민족'의 허상

     역사 의식의 분열을 건전한 통합으로 승화시킬 대안은 무엇일까. 오늘날 대다수 한국인을 지배하는 역사관은 두말할 것도 없이 민족주의다.

    필자는 몇 년 전부터 그에 대해 생각을 달리할 때가 됐다고 주장해 왔다.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민족은 단일의 혈통, 언어, 역사, 문화에 바탕을 둔 운명공동체를 가리킨다. 민족은 개인을 초월해 그 자체로 영속하는 역사적 생명체로 이해되고 있다. 역사의 진정한 주체는 민족이다. 신채호는 역사를 가리켜 “아와 피아의 투쟁”이라 했는데, 그때 ‘아’와 ‘피아’는 개별 인간이 아니라 민족을 말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사에서 이 같은 민족 관념이 생겨난 것은 불과 백년 전의 일이었다. 놀랍게도 민족은 1904년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말이었다.

    민족이란 말이나 개념은 19세기까지의 한국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왕조 시대의 한국인들은 양반, 상민, 노비로 신분이 나뉘었다. 양반은 노비를 재산으로 소유하고 지배했는데, 그 노비가 한때 인구의 절반에 육박했다.

    '김일성 민족'이란 말

    최근의 연구는 사회가 그렇게 신분으로 분열해 있는 상태에서 오늘날과 같은 민족 관념은 성립하기 어렵다고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족은 개인을 초월해 영속하는 역사적 생명체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와 함께 생겨났으며, 역사와 함께 변해가는 것이다.

     최근 군은 다문화 가정 출신의 젊은이들이 입영하는 추세에 대응해 입영선서 가운데의 ‘민족’을 ‘국민’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역사의 변화는 단일 혈통에 바탕을 둔 민족 관념이 다문화 군대의 사기 진작에 적절하지 않음을 일깨워 준 것이다.

    또한, 최근의 보도는 북한의 젊은이들이 민족 또는 민족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이 김일성을 태양으로 받드는 김일성 민족이란 뜻으로서 남한의 민족과 너무나 달라졌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같은 민족이란 말이 남과 북에서 상이한 뜻으로 쓰이게 됐음은 민족이란 말이 본래 역사와 함께 생겨난 것이며 역사와 함께 변해가는 것임을 생각하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역사 발전의 주체는 '인간 자유'

     그럼 민족의 대안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개별 인간의 자유다. 자유야말로 인간의 깊은 본성으로서 역사를 진보로 이끌어가는 기본 동력이라 하겠다.

    인간 자유를 알지 못하는 역사는 결국 정체하고 말았다. 나아가 자유는 서로 다른 인종조차 평화로운 공화국으로 통합하는 큰 그릇이다. 그 자유의 진보 능력과 통합 능력에 의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큰 성취가 가능했다.

    그 자유의 이념과 가치는 우리 한국사에서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그러한 자유주의 역사관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결코 생겨나서는 안 될 나라가 아니었으며 거저 주어진 나라도 아니었다. 아니 반드시 생겨날 나라였으며, 애써 얻어낸 나라였다.

    앞으로 이뤄갈 통일의 주체도 자유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에서 우리의 현대사를 밝고 긍정적으로 재해석해 가도록 하자.
     
    이영훈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