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신규 원전 화두, 단순 반도체 자급 넘어서야원전·SMR을 투자 자산으로 삼고 '세계 AI 허브' 노려야구글·MS가 탐낼 '청정 전력망', 글로벌 빅테크 유치 전략으로
  • ▲ 경북 울진에 있는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 경북 울진에 있는 신한울 원자력발전소 건설 현장 전경. ⓒ한국수력원자력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던진 '호남 신규 원전 건설 가능성' 화두는 단순히 한 지역의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다.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생사가 걸린 '기저전원 확보'라는 냉엄한 현실 인식이 수면 위로 떠오른 순간이다. 

    24시간 미세공정이 돌아가는 반도체 팹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는 날씨에 따라 출렁이는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치적 이념을 걷어내고 원전과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결단으로 정책 기조가 급선회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감행해야 한다. 늘어나는 국내 반도체 공장을 뒷받침하는 방어적 공급 계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 세계가 유례없는 'AI 전력 가뭄'에 신음하는 지금, 우리가 한발 앞서 대규모 전력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무기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한국 땅으로 끌어들이는 공격적 유치 전략에 나설 때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생성형 AI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데이터센터 증설을 추진하고 있으나 정작 자국 내 전력망 인프라의 한계로 발이 묶여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2년 약 460TWh에서 2026년 1000TWh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IEA는 2030년까지 이 수요가 지금의 두 배, AI 특화 데이터센터만 놓고 보면 네 배 이상 커질 것으로 본다. 

    미국의 수많은 주에서는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승인을 받는 데만 수년의 대기 시간이 소요되는 병목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이 최근 사장돼 가던 원전 기업들과 초대형 전력 구매 계약을 체결하고 멈춘 원전까지 재가동 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저렴한 토지나 세제 혜택이 아니다. 지금 즉시 고압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꽂아 넣을 수 있는 준비된 인프라다. 특히 강력한 탄소 감축 압박을 받는 서구 빅테크 기업들을 유치하려면 단순히 양만 많은 전력이 아니라 탄소 배출이 없는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력을 선제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우선 인프라를 깔고 글로벌 수요를 유치하는 '선(先)공급 후(後)유치' 전략이 필요하단 얘기다. 

    김성환 장관이 언급한 전남 영광 한빛원전과 울산 새울원전의 여유 부지를 활용한 신규 원전 4기 건설 속도전, 이재명 대통령이 공언한 SMR에 대한 과감한 투자는 이 계획의 완벽한 주춧돌이다. 원전과 SMR을 통해 24시간 흔들림 없는 무탄소 기저전원을 확보하고 이를 지역의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조화롭게 묶어 '무탄소 에너지 전용 단지'를 글로벌 빅테크에 통째로 분양하는 모델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 제조 역량과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여기에 '규제 청정 전력 인프라'라는 마지막 퍼즐이 더해진다면 아시아 거점 데이터센터 설치를 고민하는 구글이나 아마존에게 한국은 싱가포르나 일본을 제치는 대체 불가능한 최적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물론 이 담대한 구상이 장밋빛 미래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발전소를 아무리 빨리 지어도 그 전기를 기업들이 모여 있는 클러스터나 데이터센터 단지까지 실어 나를 송전망이 뚫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국가 차원의 특별법을 동원해서라도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전력망 확충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호남 등 신규 원전 부지 지역사회와의 상생과 설득이라는 고차방정식도 풀어내야 한다. 단순히 전력만 생산해 수도권으로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글로벌 테크 기업을 해당 지역에 직접 유치함으로써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통째로 부흥시키는 지방 완성형 모델을 제시해야만 지역 주민들의 진정한 수용성을 얻을 수 있다.

    산업화 시대의 대한민국은 고속도로를 닦고 포항제철을 지어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AI 혁명기인 지금, 새로운 시대의 도로이자 철강은 바로 '전력 인프라'다. 전력이 부족해 발을 동동 구르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한국으로 오라, 여기 당신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풍부하고 깨끗한 전력 인프라가 준비돼 있다"고 외칠 수 있는 선제적 결단이 필요하다. 김성환 장관이 쏘아 올린 에너지 현실주의 신호탄을 대한민국을 세계 AI 영토의 중심으로 밀어 올릴 위대한 '신(新) 국부론'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