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자르 발레 로잔, 25년 만에 서울 상륙…23~26일 GS아트센터서 내한 공연'마린스키 별' 베자르 붉은 제단에 서다…"안무 익히려 악기 순서 다 외웠다"한국 유일 단원 이민경 '햄릿' 합류 "내 인생 바꿔준 작품"
  • ▲ 발레리노 김기민이 22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BBL 내한공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인아츠프로덕션
    ▲ 발레리노 김기민이 22일 서울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열린 'BBL 내한공연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인아츠프로덕션
    "베자르 발레 로잔과 이렇게 공연하러 와서 기뻐요. '볼레로'는 제 꿈이기도 했고, 게스트 무용수로서 춤을 춘다는 것이 저에게 큰 영광이어서 많이 긴장돼요. 끝까지 집중해서 BBL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아주 좋은 공연을 보여드리겠습니다."

    20세기를 뒤흔든 현대 발레의 혁명가 모리스 베자르(1927~2007)의 숨결이 서울의 밤을 붉게 물들인다. 베자르가 1987년 창단한 세계 정상급 무용단인 베자르 발레 로잔(BBL)이 23~26일 강남구 GS아트센터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2011년(대전) 이후 15년 만이며, 서울 무대는 2001년에 이어 25년 만이다.

    김기민(34)은 지난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간판 수석무용수인 그에게도 이번 공연은 각별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블라디미르 김 선생님이 추천한 영상으로만 접하며 동경해 왔던 '볼레로'의 주역 '라 멜로디'로 서기 때문이다.

    김기민은 스위스 로잔에서 보낸 연습 기간을 "발레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마린스키에서도 리허설이 1시간을 넘기지 않는데, 여기서는 하루 3시간씩 화장실도 안 가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매달렸어요. 줄리앙 파브로 예술감독의 조언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죠."
  • ▲ 김기민(왼쪽부터) 무용수, 줄리앙 파브로 BBL 예술감독, 이민경 무용수.ⓒ인아츠프로덕션
    ▲ 김기민(왼쪽부터) 무용수, 줄리앙 파브로 BBL 예술감독, 이민경 무용수.ⓒ인아츠프로덕션
    그는 "리허설을 하면서 줄리앙이 '아 유 오케이(Are you okay)?'라고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볼레로'는 제가 꿈꾸던 무대에요. BBL이 외부인인 저에게 기회를 주고, 단장과 단원들은 첫날부터 저를 30년 함께한 일원처럼,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정말 행복했어요"라고 덧붙였다.

    베자르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곡에 역동적인 안무를 입힌 '볼레로'는 1961년 브뤼셀 왕립 라 모네 극장에서 초연됐다. 한 명의 무용수가 붉은 원형 테이블 위에서 춤추고, 그를 둘러싼 38명 단원이 점차 춤에 동참하며 군무를 완성한다. 무엇보다 동일한 선율이 반복되는 특성상 안무의 순서를 익히기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김기민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 배열을 외우는 방법을 택했다.

    "30년 념게 춤을 춘 베테랑들도 순서를 잊을 정도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나쁜 귀를 갖고 있지 않아서 '볼레로' 음악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플루트, 클라리넷, 바순 등 악기가 등장하는 순서를 전부 외웠어요. 저만의 재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귀로 음악의 층위를 읽어내니 비로소 몸이 자유로워졌습니다."

    김기민은 현재 BBL를 이끄는 줄리앙 파브로(49) 예술감독과 '볼레로'를 준비하며 인상적인 순간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어제 어머니가 제 리허설을 봤는데 '줄리앙은 저렇게 섹시한데 왜 너는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어요"라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줄리앙은 30년 넘게 '볼레로'를 췄기에 그분 영상을 보고 제 모습을 보면 솔직히 민망해요. 내게 무대 위에서 섹시하려고 섹시함이 나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힘을 빼고 동작을 깨끗하게 하면 섹시함은 저절로 나온다고 조언해줬어요"라고 했다.
  • ▲ 22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볼레로' 리허설.ⓒ인아츠프로덕션
    ▲ 22일 서울 역삼동 GS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볼레로' 리허설.ⓒ인아츠프로덕션
    파브로 감독은 김기민에 대해 "놀랍도록 영리하고 열려 있는 무용수"라고 평가했다. 파브로 감독은 "베자르가 '볼레로'를 구상했을 때 이 작품은 성별의 경계가 없는 유니섹스였다. 주역이 올라가는 테이블은 일종의 '제단'이다. 아래의 군무진을 자기를 잡아먹을 야수라 생각하고, 다가올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감동을 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내한은 김기민뿐만 아니라 BBL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인 발레리나 이민경의 참여해 기대를 모은다. 김기민의 예원학교 1년 선배이기도 한 그녀는 아시아 초연작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았다. 이민경은 "BBL 입단 6년 만에 내 인생을 바꿔준 작품을 고국 팬들께 보여드리게 돼 자부심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어 후배 무용수들을 향해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스타의 길만이 정답은 아니에요.김기민 같은 스타도 있지만 저처럼 매일의 춤 속에서 일상의 행복을 찾는 무용수도 있거든요. 특정 스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유로 일찍이 꿈을 포기하거나 낙담하지 마세요. 단순한 성공 지표가 아닌, 춤을 사랑하며 묵묵히 길을 걷는 선배의 모습을 통해 더 많은 젊은 무용수가 위로와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베자르 발레 로잔 with 김기민' 내한공연은 '볼레로' 외에도 베자르의 대표작 '불새', 아시아 초연작 '햄릿'과 '바이 바이 베이비 블랙버드', 한국 초연작인 '라 루나' 등 현대 발레의 정수를 담은 다채로운 레퍼토리가 펼쳐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