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수 정치 반복으로 정책은 반응형으로 전락제도 아직인데…다주택자 대출, 이미 '연장 브레이크'말 한마디 리스크가 키우는 금융시장 불확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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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은 보통 회의실에서 태어난다. 숫자와 표, 반대 의견과 침묵을 거쳐 문장으로 굳는다. 그러나 요즘 금융정책은 스마트폰에서 먼저 태어난다.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다. 짧고 단정적인 문장 하나가 던져지는 순간, 금융당국은 숨을 고르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백지수표가 발행되고 액수는 당국이 적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SNS를 통해 금융을 연일 직격했다.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 형식화된 이사회, 은행권의 과도한 이자 장사, 다주택자·임대사업자 대출 관행, 불공정거래 대응의 실효성 문제까지. 금융권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돼 온 숙제들이다. 문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정책이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SNS 발언이 사실상 정책 신호로 작동한 이후의 풍경은 반복된다. 금융당국은 긴급회의를 열고 며칠 뒤 대책이 나온다. 숙의는 생략된채 제도는 여론의 속도를 따라간다. 그 순간부터 금융당국은 정책 설계자가 아니라 '대응자'가 된다.

    최근 금융당국은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관행적 대출 만기 연장에 제동을 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제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대통령의 문제 제기 이후 은행권은 이미 만기 연장 심사를 보수적으로 재조정하는 분위기다. 

    더 미묘한 지점은 제도의 충돌이다. 은행권에는 '기취급 여신의 연기·재약정에는 신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여신심사 모범규준이 존재한다. 과거 대출에 현행 규제를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SNS 발언에 이 규준은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통령 발언이 제도를 앞서고 있는 셈이다.

    이 구조는 낯설지 않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와 마두로는 연설로 금융과 가격을 통제했다. 대통령의 말이 곧 정책이었고, 중앙은행은 메아리였다. 결과는 금융 시스템 붕괴와 초인플레이션이었다. 터키에서 에르도안은 "고금리는 악"이라고 말했고 중앙은행 총재는 수차례 교체됐다. 정책의 실패는 항상 관료의 몫이었으며 대통령의 권한만 비대해졌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연준은 미쳤다", "파월은 실패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연준은 독립성을 지켰지만, 시장은 흔들렸다. 통화정책 자체보다 "정치가 개입한다"는 인식이 더 큰 비용을 만들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대통령의 말이 제도보다 앞설 때 금융당국은 침묵한다. 반대 의견은 사라지고 '대통령 뜻'을 해석하는 경쟁만 남는다. 성공하면 대통령의 리더십이요 실패하면 당국의 집행 미스다. 책임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 남는다. 백지수표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융은 신뢰와 예측 가능성이 생명이다. 그러나 SNS 정치는 정책 신호를 비공식화하고, 발언 하나에 시장이 선반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 정책 발표 전부터 금리·주가·환율이 움직이고, 규제 발언에는 과도한 변동성이 붙는다. 학계 연구에서도 정치 지도자의 SNS 발언이 있는 날 금융시장 변동성이 유의미하게 커진다는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됐다.

    일본의 고이즈미 개혁이 상대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강한 리더십과 동시에 제도 개편, 책임 구조, 견제 장치를 병행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제도 없이 개인의 발언만 앞서는 경우 당국은 정책기관이 아니라 집행 사무소로 전락한다.

    대통령의 말이 SNS에 올라오는 순간, 정책은 빨라질지 몰라도 신뢰는 얇아진다. 금융을 지키는 것은 강한 개인이 아니라 말을 제도 안에 가두는 힘이다. 지금 필요한 건 또 하나의 SNS 처방이 아니다. 금융은 백지수표로 운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