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의 사람들


    살아남는 게 기적인데 그 기적이 매일 필요한 15호였다. 오늘도 변함없이 사람들은 힘에 부치는 돌을 안고 립석강 제방 위를 뛰었다. 아무런 생산성이 없는, 이 반복적인 징벌성 노역에 그들의 영혼은 쇠약해 갔다. 겨울이라 더 고통스러웠다. 여름의 돌은 무겁지만, 겨울의 돌은 아프기까지 했다. 손에 잡는 순간 냉기가 손바닥에서 손목을 타고 올라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둥그런데도 바늘처럼 찔렀다. 얼어붙어 있다 떨어질 땐 살점을 뜯어냈다. 돌은 분명 땅의 일부인데도 사람을 무너뜨렸다.

    그것도 울면서 허리를 숙이게 만들고 굽히지 않던 무릎까지 꺾게 했다. 심지어 들지 않아도 아팠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그 기운에 전염되면 종일 온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끝내 체온이 멀어지면 자다가 죽기도 했다. 15호의 혁명화 겨울은 그냥 춥다고 말할 수 있는 계절이 아니었다. 매일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죽게 하는 적혈석심(滴血石沁)의 설묘였다.

    그런 겨울을 도성진은 어른들과 똑같이 견뎌야만 했다. 어린 시절 성진의 동심 속 소원은 단 하나였다. 마술 막대기의 주인이 되는 것. 아버지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속에서는 소원이 참 쉬웠다.

    막대기를 세 번만 흔들면 뭐든 이루어졌다. 그런데 15호에 들어와 한 살 더 늘어 열일곱이 된 성진의 소원이 바뀌었다. 마술 막대기에서 현실 속의 돌이 되었다.

    "제발, 남이 들라고 하지 않게. 옮기라고 하지 않게. 아예 보이지 않게 해 달라."

    이제 성진은 자기의 생각과 몸이 모두 돌이 된 것 같았다. 아침부터 무거운 돌을 들고 뛰다 보니 어깨는 어느새 바위보다 단단해졌다. 하얗게 얼어붙은 손가락 끝은 이미 지문도 체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은 진작 동사 당해도 움직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춤은 의심이자 곧바로 처벌이었다. 그때마다 성진은 김동규 할아버지의 말을 곱씹었다.

    "살자고 하면 내 손이고, 죽자고 하면 살인 도구다. 내가 내 손을 믿는 게 운명이다."

    "뛰어라. 뛰어라."

    최종배의 목청이 들렸다. 그는 불 피운 드럼통 앞에 서 있었다. 목을 가다듬더니 다시 고함을 터뜨렸다.

    "내일이면 민족 최대 명절이다. 오늘은 충성으로 달려야 한다! 내가 서 있는 요 앞까지, 정확히 15분 안에 쌓지 못하면…"

    그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계곡 너머까지 메아리쳤다. 차디찬 공기 속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선명한 울림이었다. 그의 말은 돌을 긁어내는 손톱처럼 사람들의 신경까지 그으며 지나갔다.

    작업장 한 끄트머리에서 도련님은 팔짱을 낀 채 두 손을 겨드랑이 속에 밀어 넣고 있었다. 돌을 들기 전 마지막 체온을 짜내는 허용된 몸짓이었다. 그게 한겨울 작업장의 유일한 예열이었다. 그는 제방 위 불 옆에 서 있는 최종배를 쳐다보며 낮게 투덜거렸다.

    "그래, 이 촌놈의 새끼야… 저놈 시계는 고장도 안 나나?…"

    그 옆에 서 있던 주둥이의 눈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그는 작심한 표정으로 돌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처음에 손으로 들고 옮길 때는 소매 천을 장갑 삼아 그 위에 올려놓았다. 돌을 들고 뛰는 그의 얼굴엔 묘한 긴장이 어리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응시하는 눈빛이었다. 정확히 어떤 균열을 노리는 태도였다.

    저쪽에선 도성진이 돌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 옹헤야가 제때에 그의 등을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작은 발걸림 하나에도 이곳에선 몸이 유리처럼 깨질 수 있었다. 언제나 불행이 사고 보다 빠른 이곳에서, 처벌은 이유보다 앞서 있었다. 옆에 누가 항상 있어 주는 것이 수용소의 의리였다.

    "10분 남았다! 뛰어! 뛰어! 춥다! 추우니 뛰어!"

    최종배의 외침이 다시 바람을 찢었다. 도련님은 그 소리가 더 짜증 났는지 돌을 앞으로 냅다 던졌다. 그러고 다시 팔에 안으며 그 돌에 대고 중얼거렸다.

    "아, 너나 혼자 콱 얼어 죽어라. 촌놈의 새끼야…"

    주둥이는 돌을 안고 최종배 쪽으로 다가갔다. 걸음은 빠르게 시선은 고개 숙인 반성처럼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정확히 최종배의 군화로 향하고 있었다. 그 밑에는 육중한 그의 몸을 떠받치고 떨고 있는 뜨거운 불돌이 있었다. 그건 미꾸라지가 불피운 드럼통에서 꺼내 갈아주는 돌이었다. 그 불돌 아래에는 균형을 맞추려고 끼워 넣은 막대기가 있었다. 그 온기에 자만해서 최종배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그의 발이 땅을 더 세게 구를수록 그 막대기는 돌에서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8분 남았다! 땀 나도록 뛰어!"

    최종배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다시 외치자 도련님은 멀리서 울고 싶은 웃음을 내뱉었다.

    "이 무식한 새끼야. 땀이 어디 있냐."

    주둥이는 빈손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다시 한번 최종배 쪽을 아첨의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그가 보는 것은 군화였다. 돌 위에 선 그의 중심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돌 아래에 쌓이던 긴장감은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해져 갔다. 그는 이제 정확히 그 균열의 순간으로 달려갈 결심이 섰다. 그 실행의 도구로 먼저 왼손에 작은 돌 하나를 감췄다.

    "5분 남았다!"

    최종배의 고함이 다시 퍼졌다. 도련님이 그를 보며 이를 갈았다.

    "히야 저 촌놈의 새끼. 누가 네 시간이 궁금하대? 이 상놈의 새끼야."

    마침내 주둥이는 최종배를 정조준하고 달려갔다. 최종배는 온기를 즐기듯 발끝을 굴렀다. 그가 딛고 선 불돌은 그 움직임에 점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돌 밑에 끼워져 있던 허약한 나무막대기는 이미 도망치거나 부러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주둥이는 최종배 옆을 스치며 발끝으로 그 막대기를 정확히 걷어찼다. 불돌이 기울었다. 하늘도 기울었다.

    공기 한 점이라도 붙잡으려고 최종배의 두 팔이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중심을 완전히 잃고 뒤로 자빠지려는 찰나에 주둥이가 뒤에서 돌을 쥔 손으로 그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 둘은 함께 벌렁 뒤로 넘어졌다.

    "선생님! 다치지 않으셨습니까?"

    주둥이의 목소리는 한없이 진지했다. 그 어떤 군인보다 충성스러웠다. 심지어 목소리 끝에는 떨림까지 있었다. 걱정이 아니라 정교한 연기였다. 땅에 넘어진 최종배는 주둥이가 몸에 있는 이라도 옮긴 듯이 심하게 옷을 털며 일어섰다. 주둥이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더욱 절절하게 되물었다.

    "선생님, 정말 하나도 다친 데가 없습니까? 제가 온몸으로 막아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신음하며 허리를 잡았다.

    "잘했어. 잘했어. 야, 너 이제부터 네 활개 맘껏 펴고 쭉 쉬어."

    "몇 시까지 쉬면 됩니까?"

    "음..."

    시계를 들여다보던 최종배가 팔을 든 채로 굳어졌다. 시간이 없어졌다. 좀 더 정확히는 시계의 유리판은 아예 사라져 안의 문자판도 누가 일부러 겨눈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다. 당황한 최종배는 시계를 벗어들었다. 그러자 조각난 부속들이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렸다.

    허리를 굽혀 그 잔해들을 줍던 최종배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선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용자들이 돌을 들고 뛰고 있었다. 게다가 한 놈은 드러누워 있었다. 하얀 눈 위에 네 활개를 쫙 펴고 쉬는 주둥이였다. 미꾸라지가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웃음으로 달려왔다.

    "야, 이 새끼 딱 걸렸네."

    주둥이는 한쪽 눈만 게으르게 뜨며 중얼거렸다.

    "중대장 선생님께서 쉬라고 했어. 네 활개를 쫘아아악 펴고."

    미꾸라지가 돌아보니 최종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삼켰다기보다 말을 낼 자리를 잃어버린 얼굴이었다. 혼자 기껏 달아올랐지만 냉혹하게 버려진 불돌 같았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