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J, 초완화 정책 종료 시사…자본흐름 재편 신호중국의 對日 압박 고조…日, 금리를 전략 카드로 활용하나'엔캐리 청산' 공포, 美·中 금융시장에 동시 부담중국과 미국의 국채 시장에 타격, '일본의 힘' 보여줄 핵심 카드동북아 자본환경 변화 가속…한국도 변동성 확대 우려
  • ▲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18일 총리 관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출처=AFPⓒ연합뉴스
    ▲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18일 총리 관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출처=AFPⓒ연합뉴스
    일본은행(BOJ)이 이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지난 1일 기준금리를 연 0.75%까지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 일본 국채 수익률은 17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우에다 총재의 발언은 '아베의 후신'으로 평가 받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정책 노선과 궤를 달리한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다카이치 체제가 출범할 당시만 해도, 아니 적어도 열흘 전까지도 일본에서는 재정 확장 등 '양적 완화' 드라이브가 예고돼 왔다.

    갑작스런 기조 변화는 일본의 경제 상황만을 토대로 한 논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일본의 임금·물가 흐름 등을 감안할 때 금리 인상 시점이 다소 이른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BOJ가 완화 정책 종료를 시사한 배경에 최근 일본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를 지목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일본은 최근 중국과 정치·경제할 것 없이 전방위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 직후 '대만 유사시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은 데 대해 중국 정부가 자국민에 대한 일본 여행과 유학 자제 요청, 일본 영화·콘텐츠 규제 등 사실상의 경제적 압박 조치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금리정책 급선회는 중국의 압박 국면 속에서 일본이 새로운 대응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출처=AFPⓒ연합뉴스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출처=AFPⓒ연합뉴스
    BOJ의 금리 인상 시그널이 시장에 즉각 충격을 준 핵심 요인으로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위험이 꼽힌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일본에서 장기 초저금리에 자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이 자금은 미국 국채, 선진국 주식, 신흥국 자산 등에 분산돼 있다.

    일본 금리가 상승이 현실화하면 이 자금은 빠져나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다.

    금리 정상화 신호만으로도 자금 이동 기대가 커지면서 미국과 중국 금융시장이 동반 압력을 받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BOJ의 '매파적' 발언 직후 미국과 유럽의 채권 금리가 일제히 상승했다고 보도하며 일본 통화정책 변화의 파급력을 강조했다.

    미국 금융시장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우에다 총재의 발언 이후 4.09%까지 상승했고, 뉴욕 증시의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투자 확대를 핵심 정책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일본발(發) 금리 인상 신호는 미국에도 일정한 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양새다.

    중국의 부담은 더욱 큰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중국이 경기 둔화·부동산 리스크·외국인 자본 유출을 동시에 겪고 있는 가운데 엔캐리 자금 이탈이 더해질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FT는 BOJ의 정책 변화가 "아시아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 요인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진단은 일본의 금리 정책이 경제를 넘어 전략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는 분석으로 이어진다.

    일본은 과거부터 통화 정책을 통해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강대국에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와 있다. 

    이른바 '엔캐리 트레이드'가 힘의 원천이다. 일본의 '제로 금리' 체제 아래에서 투자자들은 일본에서 저리로 막대한 자금을 빌려 중국과 미국, 심지어 우리나라에서까지 국채와 주식을 사들였다. 엔캐리 자금은 국제 금융시장에서 제조업 이상으로 일본의 경제적 힘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엔캐리 자금이 청산될 징후만 보여도 각 국의 금융시장은 출렁거림을 반복했다. 

    실제로 일본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자, 당장 1일(현지시간) 미국 시장에는 주가와 국채 가격, 심지어 암호화폐까지 줄줄이 떨어졌다. 아직 중국 시장에서 도드라지게 상황이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조만간 폭풍이 몰아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흐름을 놓고 볼 때 일본이 통화 완화 정책을 종료하고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전환하겠다고 나선 것은 사실상 '자본 흐름의 통제력 복구'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미중의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국면에서 일본이 취할 수 있는 영향력 확대 수단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셈이다. 

    중국의 '한일령'이 거세게 몰아치는 가운데 미국이 우방국인 일본의 편을 선뜻 들지 않고 뒷짐을 지고 있던 상황에서 일본이 "돈(경제)에 돈으로 맞선다"는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 가능한 셈이다. 중국에 엔캐리 자금이 청산돼 자금이 빠져 나갈 경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라는 것이다. 

    엔캐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위협적인 요소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국채 금리를 안정시키고, 이를 통해 막대한 재정 적자 부담을 해소하고 싶어한다.
     
    12월 금리 인하를 강하게 촉구하고, 자신의 측근을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에 앉히려는 것도 금리 인하의 길을 열기 위함이다. 일본 등 제조업 강국들을 압박해 막대한 투자 자금을 미국 본토로 끌어 들이고, 금리를 낮추는 한편으로 스테이블 코인 발행을 통해 달러화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그림이다. 

    그런데 일본의 생각은 다르다. 미국에 투자를 해주는 대신, 금리를 올려 엔캐리 자금의 청산을 통해 일본에서 빠져 나가는 자금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시장의 균형을 맞추려는 복안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일본의 금리 인상은 단순히 경제적 게임이 아니라, "경제를 통해 정치와 외교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전주곡"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강대국들의 또 다른 헤게모니 다툼에서 한국이 또 한 번 '새우등'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 금리 상승 시 원·엔 환율 상승, 외국인 수급 변동, 한국 국채 금리 상승 등이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한국에 미치는 영향은 중국과 미국에 대한 직접적 파급 이후 2차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있지만, 결국 엔캐리 자금의 이동은 한국 금융시장에 예상보다 큰 나비효과를 몰고 올 수 있다. 특히나 이재명 정부가 돈 풀기 정책을 계속할 경우 그 후폭풍은 돈을 푸는 만큼 더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