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어 EU도 韓 외교에 전략적 선택 요구 신호서방 '탈중국' 재편 속 한국 모호성 한계 노출
  • ▲ 이재명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22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 양자회담장에서 한-독일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22일(현지시각)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 양자회담장에서 한-독일 정상회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의 대(對) 중국 인식이 궁금합니다."

    22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던진 질문은 통상적 외교 수사를 넘어선 '돌직구'였다. 공개 모두발언에서 특정국의 대중 전략을 정면으로 묻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 장면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마저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는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국익 중심 외교'와 '전략적 모호성'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의 대중(對中) 전략 재정립 흐름 속에서 점차 유효기간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신호다.

    이 대통령은 이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독일이 먼저 간 길이 있어 배울 점이 많다"며 통일 독일의 경험을 언급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이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노하우가 있다면 알려 달라"고 말했다. 사실상 중국 문제에 대한 답변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엔 이 대통령이 '전략적 모호성'으로 답을 회피했다기보다,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중국 문제를 명확히 언급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오히려 메르츠 총리는 질문 자체에 의도를 담고 있었고, 답변을 기대했다기보다 한국의 외교적 태도를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메르츠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저희(독일)는 대(對)중국 전략을 고심 중”이라고 밝히며, 한국의 인식과 접근법을 참고하려는 취지임을 분명히 했다. 독일이 중국과의 경제·기술 관계 설정을 다시 짜는 과정에서 한국의 시각은 중요한 비교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정학적 현실주의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으며, 중국 리스크 축소를 공동 전략으로 채택한 상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유럽 주요국은 동맹국들의 입장 정리를 요구하고 있다.

    독일은 EU의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을 주도하는 핵심국이다. 메르츠 총리 역시 중국 의존 축소를 수차례 강조해왔고, 중국을 "공급망과 기술 안보에 구조적 위험을 안긴 존재"로 규정해왔다.

    미·중 경쟁이 격화하고 EU·NATO까지 '중국 리스크 축소'를 국가전략으로 채택한 가운데 한국의 모호성은 동맹국 입장에서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기술·안보 협력 구도 속에서 한국에 더 큰 역할을 요구해 왔고, 일본과 유럽 역시 지정학적 재편 과정에서 한국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 지도자가 한국 대통령에게 노골적으로 "중국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는 장면은, 한국의 선택을 지켜보는 단계를 넘어서 한국 외교에 대한 신뢰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서방이 한국의 전략적 명확성을 더 이상 당연하게 기대하지 않는다는 냉랭한 기류가 읽힌다.

    메르츠 총리의 질문과 이 대통령의 회피성 답변은 한국 외교가 쥐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노출한다. 이재명 정부가 "양쪽에서 이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국익 중심 외교를 앞세우고 있지만, 이미 국제질서는 '양다리 실리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번 장면은 이런 방식의 외교가 이제 유효기간의 끝자락에 와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