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과연 있는가?이리저리 떠다니는 부동층 아닌가?586과 보수-반공세력, 같은 값으로 평가말라
  • ▲ 채진원 경희대 교수 저서《조국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 : 유교적 습속과 행태》
    ▲ 채진원 경희대 교수 저서《조국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 : 유교적 습속과 행태》
    [편집자 주]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

    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

    두번째 책으로 채진원 『조국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 : 유교적 습속과 행태』(푸른길, 2025)가 선정됐다,
    필자는 서명구 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 서명구 박사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성신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통령 비서관, 국회의장 비서관 등을 역임했으며 통일부 정책 자문위원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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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챗Gpt가 이 글을 읽고 만든 삽화. 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챗Gpt가 괴물로 묘사한 586이 화를 내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챗Gpt
    ▲ 챗Gpt가 이 글을 읽고 만든 삽화. 글의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린 것 같지는 않다. 챗Gpt가 괴물로 묘사한 586이 화를 내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챗Gpt
    ■ 오도된 ‘민주’와 ‘민족주의’

    현재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586세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정치가 광기의 파당적 진영논리에 갇혀 극심한 분열상을 노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쉬운 것은 오늘의 현상, 특히586의 반민주적이고 이율배반적 사고와 행태에 대한 상세한 서술과 날카로운 비판은 넘쳐나고 있지만, 이러한 일들이 왜 벌어졌는가에 대한 심층적 분석 그리고 원인 진단과 처방은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채진원 『조국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 : 유교적 습속과 행태』(푸른길, 2025)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독립적 저서라기보다는 별도로 발표된 글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책 전체의 논지는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책은586이 내세우는 민주주의-민족주의속에 도사리고 있는선악 이분법내로남불적 위선의 가치관을 찾아낸다. 
    이는《위정척사론》《소중화론》등 적과 동지를 구별하여 차별하는유교적 사유 구조와 습속을 닮았다고 지적한다. 
    이 모든 것의 심층부에는신인합일(神人合一)의 무한 세계관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이는 근대 유럽의 민주적 습속-행태를 만들어낸신인분리(神人分離)의 유한 세계관과 대척점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오늘의 오도된 ‘민주’와 ‘민족주의’는 바로 이러한586세대의 유교적 습속-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며, 따라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신인분리 세계관》에 입각한 청교도적 습속, 그리고 애덤 스미스《공감과 소통하는 도덕감정론》 공화주의를 대안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 586의 주자학적 세계관

    필자는 이러한 논지에 대해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특히 586의 습속과 행태 등 현상 진단과 비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몇 가지 아쉽다고 생각되는 부분, 좀 더 보완되었으면 하는 측면들을 나름대로 언급해 보고자 한다. 

    이 책은 일종의 정치문화론적 접근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국은 유교적 습속은 그대로 둔 채《제도 이식론》을 추구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기 어려웠으며, 따라서 도덕감정론·경험론·보통법·연방주의 같은 민주적 습속을 창출, 이를 내면화-제도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586 문화를《주자학적 세계관》과 흡사하다고 바로 연결하다 보면,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586의《선악 세계관》은 유교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보다는 저들이 금과옥조로 떠받쳐 왔고 지금도 완전히 불식하지 못하고 있는 마르크시스트 혁명이론 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마르크시즘 자체의 무한 세계관적 성격, 그리고 586이 이를 체현하는 양상을 본격적으로 분석해서 보완해 주면 금상첨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애덤 스미스의 법 감정·공감을 강조하면서 자생적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점에 크게 공감하지만, 우리 국민의 상식적 판단과 법 감정을 중시하다 못해 부동의 절대기준으로 보는 것 같은 경우가 있어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조국 사퇴에 동의하면서도 ‘검찰개혁’을 지지하는 다수의 중도파와 상식파”를 중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중도층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도층이라기보다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586쪽으로 쏠리고 마는 부동층(浮動層)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습속(moeurs, mores)의 타락,《체제 타락》이라는 것은 고대로부터 많은 현자들이 지적해 온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예외 없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 ▲ 586의 선악이분적 사고와 내로남불적 위선의 대표적 끝판 인물은 조국이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당 임시대표로 복귀한 뒤 다시 특유의 위선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 이종현 기자
    ▲ 586의 선악이분적 사고와 내로남불적 위선의 대표적 끝판 인물은 조국이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자신의 당 임시대표로 복귀한 뒤 다시 특유의 위선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 이종현 기자
    ■ 박원순의 완장찬 중간조직

    이 책의 지방자치에 대한 부분은 상당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 

    특히 이른바 <박원순식 서울형 주민자치모델> 에 대한 비판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마을공동체》라는 미명 하에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위계적 외부《중간조직》이 완장을 차고 주민자치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단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생적 그룹의 성장을 지원하는 한시적 지원에 머물러야 한다는《보조성의 원리》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강했으면, 더욱 훌륭한 논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 공화주의 개념 서술 미흡

    근래 공화주의에 대한 언설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이 책의 공화주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 윤곽이 잡히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하지 않아서 아쉽다. 
    민주공화국은 민주국을 넘어서 공화국을 지향하는 통치체제라고 하거나, 민주주의를 좋게만 보지 말고 그 의의와 한계를 밝히면서 보완하는 것이라는 설명은 편의적 차원에서는 가능하겠지만, 명확히 개념을 밝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1단계인《민주 단계》가 어느 정도 달성된 만큼, 이제는 2단계인《공화 단계》로 이행하는 게 적절하다는《단계론》또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다. 

    한편 자신이 공감하는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자유 공화주의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하는가 하면, 저자의 다른 책에서는 자신의 주장과 자유 공화주의는 거리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층 명확하고 일관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 586과 우파세력이 등가물?

    이 책은 주로 586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586과 자유주의 혹은 우파세력을 싸잡아《진영논리》라는 등가물로 인식, 양자를 함께 비판하고 있다. 
    특히 “이승만-박정희 독재 정권 시기 반공과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권을 제약해도 상관없다” 는 식이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은 “자유와 기본권을 제약해도 상관없다 가 아니라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보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의 보수세력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586》과《보수-반공세력》은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이 크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점은 정치 양극화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즉 정치 엘리트들이 민심과 다르게《강성 지지층 결집》을 위한《정략적 극단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면서《중도화》를 처방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양극화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민주헌정체제에 대한 기본적 합의가 깨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586의 반민주적 세계관-가치관 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하여 현재 이질적인 세계관, 가치관이 극심하게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료 시민으로서 동감 의식을 확대하고 혐오와 증오의 발언을 자제하고 포용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본적 합의가 가능한가, 그것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공화주의로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공화주의인가, 자유 공화주의(liberal republicanism)인가 시민적 공화주의(civic republicanism)인가? 
    이 책은 스스로 자유 공화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것 같은데, 다른 곳에서는 또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등 명확하지 않다. 

    이점은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유사하게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한반도는《한미일의 방파제》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대리전으로 제2의 한국전쟁 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자유의 수호》라는 가치문제가 증발된 것이다. 

     

  • ▲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을 부정하고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세력의 전면에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있다. ⓒ 정상윤 기자
    ▲ 1948년 대한민국 건국론을 부정하고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는 세력의 전면에는 이종찬 광복회장이 있다. ⓒ 정상윤 기자
    ■ 어설프고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룬 부분은 아니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간혹 눈에 띈다.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1919년 상해임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법통성 차원-정신적 차원에서는 말할 수 있겠지만,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DJ의《선비의 문제의식, 상인의 현실감각》을 공화주의에 연결하는 것도 무리해 보인다. 
    DJ의 논법은《상인은 몰가치적 실용주의자》로 여기고《선비는 한 차원 위의 가치적 문제 제기자》로 여기는 식의 발상을 담고 있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어설픈 시각이다. 
    애덤 스미스의 관점으로 보자면 상인정신의 핵심에는《도덕감정》이 있다. 
    그리고 이른바 선비의 문제의식은 역사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공허한 경우가 많다. 
    DJ의 논법을 공화주의 정치에 갖다 대는 건 섣부르다.  
     
    노무현이 공화주의 정신을 가졌다는 것도 그렇다. 
    그가 “반칙과 특권을 거부하는 상식의 세상과 원칙 있는 패배를 추구한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특히 대통령으로서 그의 행태가 과연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따져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또한《촛불 시민혁명으로 전 세계의 모범이 되는 한국》과 같은 시각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 586 병리학 해부서

    부분적으로 의견을 달리하거나,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는 점이 없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오늘날 우리 사회와 정치를 분열과 대립으로 몰아넣고 있는 586그룹의 실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가치를 갖고 있다. 

    이 책은 이들 맹신자들이 정작 자신의 병적인 심리는 외면하면서 이웃의 일에 간섭하고 세상사 특히 정치를 농단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맹렬한 고발이면서 이에 대한 하나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 ▲ 필자 서명구 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
    ▲ 필자 서명구 한국자유회의 운영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