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리프트 타고 내부 침입한 뒤 범행 7분 만에 달아나8점 도난, 박물관 인근서 외제니 황후 왕관은 부서진 채 회수"값으로 매길 수 없는 유산 사라져"…인력 감축 속 보안 허점 지적
  • ▲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차. EPA 연합뉴스. 251019 ⓒ연합뉴스
    ▲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차. EPA 연합뉴스. 251019 ⓒ연합뉴스
    일요일인 19일(현지시각) 오전 프랑스 파리의 관광명소 루브르 박물관에 4인조 괴한들이 사다리차를 타고 침입해 보석류를 훔쳐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프랑스에서 박물관 도난사건이 끊이지 않으면서 보안인력 감축 논란이 재점화할 것으로 보인다.

    AFP·AP통신, BBC방송,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범인들은 이날 오전 개장시간 30분 뒤인 9시30분께 박물관에 침입해 프랑스 왕실 보석류가 전시된 '아폴론 갤러리'에서 보석류를 훔쳐 달아났다.

    라시다 다티 프랑스 문화장관은 사건 발생 직후 엑스(X·옛 트위터)에 "강도사건이 발생했다"고 썼으나, 프랑스 당국과 언론은 이후 이 사건을 강도보다는 '절도'로 표현하고 있다.

    로르 베퀴오 파리 검사장은 BFM TV에 보석을 훔친 4명을 쫓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들이 보석류 9점을 훔쳐냈고, 그중에 1점은 범행 현장 인근에서 회수됐다고 말했다.

    프랑스 언론은 범인들이 떨어뜨리고 간 보석은 나폴레옹 3세 황제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으로, 부서진 채로 발견됐다고 전했다. 루브르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왕관은 다이아몬드 1354개와 에메랄드 56개로 장식된 것이다.

    프랑스 문화부는 아폴론 갤러리에서 도난당한 보물 8점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면서 △나폴레옹 1세가 부인 마리 루이즈 황후에게 선물한 에메랄드·다이아몬드 목걸이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왕관과 브로치 △18세기 마리 아멜리 왕비와 오르탕스 왕비와 관련된 사파이어 목걸이 등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베퀴오 검사장은 범인들이 센강 쪽 외벽에 사다리차를 대고 올라갔으며 범행 후에는 전동 스쿠터를 타고 달아났다고 전했다. 주요 외신도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다리가 박물관 2층에 걸쳐져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도했다.

    범인들은 강화유리나 금속을 끊어 내는 휴대용 전동공구인 앵글 그라인더로 보석들을 훔쳤다. 범인들이 앵글 그라인더로 당시 경비들을 위협했다고 AFP는 전했다.

    이들이 표적으로 삼은 아폴론 갤러리는 프랑스 왕실 보석류가 있는 화려한 전시실로, 센강 쪽에 위치하며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는 불과 250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다만 아폴론 갤러리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으로 꼽히는 140캐럿짜리 레장 다이아몬드는 도난품에 포함되지 않았다.
  • ▲ 루브르 박물관 범행 현장의 감식팀. 로이터 연합뉴스. 251020 ⓒ연합뉴스
    ▲ 루브르 박물관 범행 현장의 감식팀. 로이터 연합뉴스. 251020 ⓒ연합뉴스
    로랑 누네즈 내무장관은 앞서 프랑스 매체에 범행이 단 7분 동안 일어났으며 도난당한 보석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품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에 "루브르에서 벌어진 도난은 우리가 아끼는 역사적 유산에 대한 공격"이라며 "범인들을 반드시 잡고 유물을 되찾을 것"이라고 적었다.

    외신들은 파리 경찰청에서 불과 800m 떨어진 곳에서 개장시간에 일어난 대담한 범행으로, '보안 구멍'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짚었다.

    극우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엑스에 "루브르는 우리 문화의 세계적 상징이며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국가의 부패가 어디까지 간 것인가"라면서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 화살을 돌렸다.

    박물관은 이날 하루 휴관했다.

    박물관 측은 AFP에 "조사를 위한 흔적과 단서를 보존하기 위해" 박물관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현재 60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된 팀이 이 사건을 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해에만 방문객 900만명이 찾은 관광명소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부터 유럽까지 전세계 유물과 예술 작품 3만3000점을 전시하고 있다.

    절도 및 강도사건도 여러 차례 겪었다. 191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도난사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자가 훔쳐낸 모나리자는 2년여 만에 루브르로 돌아왔고, 이 사건으로 모나리자의 유명세는 더 높아졌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최근 몇 달 동안 박물관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파리 자연사박물관에서 60만유로 상당의 금 샘플이, 이달 초에는 리모주시의 한 박물관에서 650만유로로 추정되는 도자기류가 도난당했다.

    지난해에는 도둑 네 명이 도끼와 야구방망이를 이용해 파리의 또 다른 박물관에서 유물들을 훔쳐 간 사건도 있었다.

    이번 사건까지 더해지면서 세계적인 미술관의 보안수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되고 있다.

    파리시 부시장인 녹색당 소속 다비드 벨리아르는 "이번 도난사건은 박물관 직원들이 보안취약성을 경고한 지 몇 달 만에 발생했다"며 "왜 박물관 경영진과 문화부는 이를 무시했는가"라고 엑스에 글을 올렸다.

    프랑스 정부는 이미 루브르 박물관의 보안점검을 진행 중이었다고 밝혔지만, 노동조합은 수년간 보안인력 감축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AFP에 "지난 15년간 약 200명 규모의 정규직이 감축됐다"며 "물리적 감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