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주에 3-0 대승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서울 팬들의 분노의 플래카드2016년 이후 K리그 우승하지 못하는 서울에 강력한 메시지 전달
  • ▲ 서울 팬들이 분노의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걸었다.ⓒ뉴데일리
    ▲ 서울 팬들이 분노의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를 경기장에 걸었다.ⓒ뉴데일리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 이곳은 FC서울 팬 '성토의 장'으로 변했다. 

    광주FC와 K리그1 30라운드를 펼친 장소. 이곳에서 서울 팬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냈다. 울분의 메시지를 전했다. 간절함의 깊이를 표현했다. 

    이 경기 전까지 서울은 벼랑 끝에 몰렸다. K리그1 28라운드에서 FC안양에 1-2로 졌다. '연고지 더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패배한 것이다. 그것도 홈에서. 서울 팬들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이어진 29라운드에서도 강원FC에 2-3으로 졌다. 리그 2연패. 리그 순위는 하위 스플릿에 포함된 7위. 

    주중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했다. 서울은 일본 마치다 젤비아와 1-1로 비겼다. ACL2에 나선 포항 스틸러스를 포함해 ACL에 나선 K리그 4팀(서울·울산HD·강원·포항) 중 유일하게 승리하지 못한 서울이다. 공식 경기 3경기 연속 무승.

    광주전은 그래서 긴장감이 돌았다. '절대 위기'였다. 여기서 더 미끄러지면 서울은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 있었다. 

    서울 팬들은 경기장에 '플래카드'를 걸었다. 그 속에 담긴 글자 하나하나가 날카롭다. 서울 팬들이 김기동 감독과 서울 선수들, 그리고 서울 구단에 전하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응어리진 감정을 폭발하듯 내뱉은 메시지다. 

    경기장 1층에 걸린 플래카드의 내용은 이렇다. 

    위기의식. 성적이 곧 팬들의 자존심.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팀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팀이라는 걸 명심하라. 이 짓도 지겹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경기장 2층에도 플래카드를 걸었다. 

    전술, 투지 실종. 남은 것은 실점. 프로라면 승리로 대답하라. 아쉽다, 죄송하다는 이제는 듣기 싫다. 언제까지 지지자만 간절한가. 우리의 플랜에 하위는 없다. 우리만 향하고 있는 7번째 별.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필요 없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하라. 

    뼈를 때리는 메시지다. 서울 팬들이 최근 부진의 흐름 때문에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참고, 인내하고, 속으로 삭히다 이번에 폭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은 K리그 전통의 강호다. 총 6회 우승(1985·1990·2000·2010·2012·2016)을 자랑한다. 전북 현대(9회)와 성남FC(7회)에 이은 K리그 역대 3위. 

    K리그 '명가'라는 자긍심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데, 우승한 지 10년이 다 돼간다. 2016년이 마지막 우승이다. 서울 팬들의 자존심은 이 긴 세월 동안 무너지고, 또 무너졌다. 

    리그의 주도권은 전북과 울산HD라는 '현대가'에게 넘겨준 지 오래. 언제부턴가 서울은 더 이상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 아니었다. 우승은 남의 일, 그냥 상위권 정도 유지하는 게 최고 목표인 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서울 팬들의 상처는 쌓이고 쌓였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서울 팬들이 다시 되새겨 주는 것 같다. 그들이 "우리는 더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팀이 아니라 가장 높은 곳에 있어야 할 팀이라는 걸 명심하라"고 외친 이유다. 

    서울은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어야 한다. 또 우승해야 하는 팀이다. 그저 그런 상위권 팀으로 고착화돼서는 안 된다. 서울 감독, 선수들, 수도의 구단, 리딩 클럽, 최고 인기 클럽의 구성원이라면 이 책임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승하지 못하는 서울은 '직무 유기'다. 9년 동안.  

  • ▲ 김기동 감독은 광주에 3-0 대승을 이끌었지만 서울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김기동 감독은 광주에 3-0 대승을 이끌었지만 서울 팬들의 야유를 받았다.ⓒ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올 시즌을 앞두고 서울 팬들은 정말 오랜만에 우승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시즌 전 서울은 현대가 두 팀과 함께 우승 후보에 포함됐고, 올 시즌 K리그1에서 가장 강력한 스쿼드를 꾸렸다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 기대도 무너졌다. 강호다운, 우승을 할 만한 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상승세를 타려고 하면 쉽게 무너지고, 반전의 발판을 마련하면 또 미끄러지고. 이런 과정의 반복이었다. 이런 과정으로는 절대 우승하지 못한다. 실제로 우승은 멀어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위 스플릿으로 떨어지는 굴욕도 선사했다. 6위 밑으로 떨어지자, 서울 팬들이 참지 못한 것이다.

    김기동 감독을 향한 '불신'이 강하다. 성적과 함께 '기성용 이적 사태' 파장으로 여전히 서울 팬들은 김 감독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다. 서울이 골을 넣어도 김 감독을 향한 야유를 멈추지 않는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메시지는 김 감독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팀 추락의 책임이 오직 감독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서울 팬들은 서울 선수들에게도 냉정한 시선을 보냈다. 

    서울 팬들은 무서운 행동으로 나서고 있다. 플래카드뿐만 아니라 경기장을 외면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프로 축구단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행동이다. 팬심이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1만 5221명이다. 직전 라운드까지 서울의 홈 경기 평균 관중은 2만 4632명이었다. 2만명이 무너졌다. 그리고 올 시즌 주말 경기 최소 관중 신기록을 세웠다. 민심이 이렇게 돌아섰다. 민심이 이렇게 무섭다. 

    추락 직전 서울은 오랜만에 대승을 거뒀다. 3-0 승리. 둑스의 선제골이 이어 이승모, 문선민까지 3골 폭죽을 터뜨렸다. 서울은 하위 스플릿을 빠져나오며 상위 스플릿의 한 자리인 5위에 위치했다. 

    이번 한 번의 승리로 민심이 돌아설 리는 만무하다. 서울 팬들의 메시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진정한 반전을 이뤄내야 한다. 진정한 반전이란. 서울이 다시 우승 경쟁을 하고, 정상에 서는 것이다. 반짝 상승세에 만족할 서울 팬들이 아니다. 서울 팬들의 자존심을 다시 찾아줄 때까지, 그들의 분노는 이어질 것이다. 

    경기 후 문선민은 서울 팬들의 플래카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기동 감독님이 야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수로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플래카드를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그라운드에서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영향을 받는 선수들도 있다. 선수들이 잘했으면 야유나 걸개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승리로 K리그 역대 15번째로 100승(70무 69패)을 달성했지만, 웃지 못한 김 감독이다. 3-0으로 승리했지만 홈 팬들에게 야유받는 K리그 유일한 감독.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이런 부분은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다. 감독이라는 자리는 항상 고독하고 어렵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부분을 서울 팬들에게 전달됐으면 한다. 서울을 위해 축구만 생각한다. 서울만 생각하고 달려왔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이전에 내 삶의 98%가 축구, 1%가 가족, 1%가 골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서울에 뼈를 갈아 넣고 있다. 계속 좋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더 나아가 서울이 우승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김 감독도 알고 있다. 서울 팬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우승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