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일동 일대, 붕괴 위험 큰 '변성암 단층 파쇄대'하지만 터널 막장 지질조사는 용역 계약 업체가국토부, 사고조사위엔 '토질 전문가' 있다지만"자세한 인력 구성 비율은 말씀드리기 어려워"
  • ▲ 3월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정상윤 기자
    ▲ 3월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정상윤 기자
    [편집자주]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국가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고속도로·교량·항만 등 다양한 토목공사가 시행돼 왔다. 특히 수도 서울에선 다양한 '지하철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지질학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쉽게 말해 토목공사를 담당할 '외과의사'는 많은데 정작 공사가 진행되는 땅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지형인지를 알고 있는 '내과의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지질에 맞게 칼과 톱을 대야 우리는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인재(人災)가 천재(天災)로 탈바꿈되기 쉬운 싱크홀 사고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싱크홀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과 해외 사례를 집중 조명한다.

    지난달 24일 발생한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현장은 오랜 지각변동을 받아 변형되기 쉬운 '변성암 지질'에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가 진행돼 논란이 일었다. 이런 가운데 터널 공사 당시 현장에는 지질 상태를 확인해 붕괴 위험을 예측할 수 있는 지질 전문가가 사실상 투입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외주가 아닌 시공·감리 회사에 정식 직원으로 소속된 지질 전문가가 현장에 상주하며 지질구조를 파악해야 한다고 비판한다.

    ◆ 9호선 터널 공사 현장에 '지질 전문가' 사실상 없었다

    22일 뉴데일리 취재 결과 명일동 싱크홀 사고 지점 지하 11m에서 진행 중이던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의 터널 굴착 공사의 막장(가장 끝 부분)에는 지질 위험성을 수시로 확인할 수 있는 지질 전문가가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명일동 일대는 지질이 복잡하고 취약한 변성암 단층 파쇄대가 넓게 분포돼 있다. 이 파쇄대에는 지하수가 쉽게 침투하기 때문에 깊은 땅 속까지 풍화와 변질이 심하다. 터널 공사 도중 붕괴 사고 위험도 크다. 따라서 조사·설계·시공 단계에서 이런 특징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 특히 서울에는 화강암(서울 면적의 36%)보다 변성암(64%)이 더 많이 분포해 있다.
  • ▲ 우리나라 화강암·변성암 지질 특성 비교 ⓒ황유정 디자이너
    ▲ 우리나라 화강암·변성암 지질 특성 비교 ⓒ황유정 디자이너
    올해 1월 개통된 세종-포천고속도로가 지나는 구간인 명일동 싱크홀 지점은 이미 고속도로 공사 당시 지하 암질이 변성암에 해당한다는 경고도 있었다. 지하철 9호선 터널 공사 당시 이 일대가 변형에 취약한 변성암 지질이기 때문에 설계·시공 단계에서 면밀한 지질조사가 이뤄졌어야 한다는 얘기다. (관련 기사: [단독] 명일동 싱크홀 지역 '변성암 지질' 8년전 경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도기본)에 따르면 지하철 9호선 연장 사업의 터널 막장 지질조사는 용역 계약 업체가 맡고 있었다. 감리 회사가 지질 분석만을 전문으로 하는 정직원이 아닌, 계측 및 지질 등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는 데 그치는 인력을 단지 외주 형태로 고용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터널 막장 지질조사는 외주 계측 기술자가 담당하는 게 업계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터널 막장 지질조사는 계측 직원이 외주 형태로 계측과 함께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선 "터널 공사 때 지질 전문가가 시공사나 감리사에 상시 근무하면서 터널 막장 지질 상태를 확인하고 수시로 보강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감리단은 "막장 관찰자는 설계 시 조사된 지반조건과의 일치 여부만을 주로 확인한다"고 항변했다. "싱크홀 사고 지점은 토사 구간이기 때문에 '탄성파 시험' 미적용 구간"이라는 것이다. 탄성파 시험이란 GPR(지반투과레이더)보다 더 깊은 지하까지 전파돼 땅 속 암반을 면밀히 살피는 데 쓰이는 지질분석 기법이다.

    전문가들은 터널 굴착 공사 시 지질조사가 충분히 이뤄지려면 탄성파 시험을 통한 '터널 전방 지질 상태'가 확인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지질조사가 이뤄졌다고 말하려면 터널 앞 쪽이 어떤 상탠지 알기 위한 전방 지질조사가 필수"라며 "이는 탄성파를 쏘는 방식 등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명일동 싱크홀 사고 이후에도 GPR 조사 강화를 핵심 대책으로 내놓았다. GPR은 전자기파를 이용해 지하의 빈 공간이나 구조물 위치를 탐지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확인 가능한 최대 깊이는 2m 정도에 그친다. 지하 11m에서 발생한 명일동 싱크홀과 같은 대형 싱크홀을 사전 예방하는 데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 ▲ 싱크홀 방지법이라 불리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38조 ⓒ황유정 디자이너
    ▲ 싱크홀 방지법이라 불리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 제38조 ⓒ황유정 디자이너
    ◆ 명일동 싱크홀 사고조사위, '지질 전문가' 참여했나

    나아가 명일동 싱크홀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있는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고조사위)의 전문가 인력 구성에 관심이 쏠린다. 명일동 일대가 오랜 지각변동을 받아 취약한 변성암 지질인 만큼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서 지질 분야 문제가 충분히 검토될 수 있느냐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사고조사위는 12명 위원으로 구성됐다"며 "토질지질·토목시공·지하수위·법률 전문가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각 분야별로 인력이 골고루 배치됐는지, 토질지질 분야에 전문성을 띤 지질학 전문가가 참여했는지는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명일동 싱크홀의 원인조사 중간에 추가 검토가 필요할 경우 전문가를 별도로 구성할 수도 있다"며 "현재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원인들을 밝힐 수 있도록 포괄적으로 조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일명 싱크홀 방지법이라 불리는 '지하안전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고조사위 위원은 ▲대학에서 토질·지질 또는 안전관리 분야 과목을 가르치는 부교수 이상으로 5년 이상 재직한 사람 혹은 ▲ 박사학위 취득 후 토질·지질 또는 안전관리 분야 전문기관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사람 등이어야 한다.

    사고조사위 운영 기간은 지난달 31일부터 다음달 30일까지 2개월간이다. 이들은 설계도 등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관계자 청문을 통해 사고 원인을 분석한 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명일동 일대 땅꺼짐 발생 지역은 지난 21일 도로 복구 공사가 완료돼 통행이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