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성암에 터널 공사' 해외선 붕괴 공식연희동·명일동·신안산선 사고 공통 적용안전보다 비용 우선시…골든타임 놓쳐"3D 땅 속 지도 만들어 시공에 활용해야""토목 따로, 지질 따로 학과 칸막이 깨야"
  • ▲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교 인근에서 대규모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3월 27일 작업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정혜영 기자
    ▲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교 인근에서 대규모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째인 3월 27일 작업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정혜영 기자
    [편집자주] 한국은 1970년대 이후 국가 경제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고속도로·교량·항만 등 다양한 토목공사가 시행돼 왔다. 특히 수도 서울에선 다양한 '지하철 공사'가 활발히 진행 중이지만 이에 수반되는 지질학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쉽게 말해 토목공사를 담당할 '외과의사'는 많은데 정작 공사가 진행되는 땅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지형인지를 알고 있는 '내과의사'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변화무쌍한 지질에 맞게 칼과 톱을 대야 우리는 인명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뉴데일리는 인재(人災)가 천재(天災)로 탈바꿈되기 쉬운 싱크홀 사고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싱크홀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과 해외 사례를 집중 조명한다.

    '변성암' 땅에 실시된 '터널 공사'가 붕괴 위험을 키웠다. 서울 연희동·명일동 싱크홀과 경기 광명 신안산선 사고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토목공사 과정에서 땅 속을 해석할 지질 전문가 양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선진국에선 지질 특성을 고려한 지하 개발이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땅에 맞는 공사'를 위해 토목 전문가와 지질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협업한다는 얘기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3D 땅 속 지질도를 만들어 지반침하 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2차적으로는 지반침하 사고가 인명피해로 이어지는 걸 막기 위해 지자체·주민·시공사를 긴밀하게 연결하는 재난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시가 지질 공무원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주민·시공사와 함께 24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 ▲ '변성암 땅에 터널 공사를 하면 지반 붕괴 위험이 높다'는 내용은 지질공학 외국 전문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질공학 분석과 평가(Geotechnical Engineering Analysis And Evaluation)』(1985. Roy E. Hunt)
    ▲ '변성암 땅에 터널 공사를 하면 지반 붕괴 위험이 높다'는 내용은 지질공학 외국 전문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질공학 분석과 평가(Geotechnical Engineering Analysis And Evaluation)』(1985. Roy E. Hunt)
    ◆ 변성암 땅에 터널 공사? 선진국에선 붕괴 공식

    30일 뉴데일리 취재 결과 '변성암 땅에 터널 공사를 하면 지반 붕괴 위험이 높다'는 사실은 해외 선진국들 사이에선 널리 통용되는 지질학 이론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내용은 지질학과 토목공학을 융·복합한 지질공학 외국 교과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질공학 분석과 평가(Geotechnical Engineering Analysis And Evaluation)』는 1985년 미국에서 출간된 전문서다. 영미권 실무 위주 지질 전문가들이 즐겨보는 책으로, 세계 10위권 대학인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활용된 바 있다.

    이 책은 터널이 암석을 가로지를 경우 지반 침하를 초래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하 개발 시 연약하고 점토가 풍부한 지질대(변성암 지질)는 주변 압력을 받으면 터널이 변형되거나 무너질 위험이 점점 커진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국내 토목 전문가들은 이같은 지질 특성을 자세히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도시개발은 토목 기술자들이 주도하다 보니 지질에 대한 이해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국내 토목공사의 관행을 지적한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미국, 영국 등은 토목 전문가들이 지질 전문가들과 유기적으로 협업한다"며 "우리나라는 지질을 등한시하는 관행을 개선할 교육 시스템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지질·토목을 융합한 학문 지식을 도시개발에 적용할 전문가 양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제2의 연희동·명일동·신안산선 사고는 막기 어렵다"며 "세 사고 모두 지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토목공사에 천착해 땅을 개발한 결과 생긴 부작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 ▲ 4월 10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현장에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땅꺼짐으로 진입을 통제합니다. 우회하세요'라는 주의문이 붙어 있다. ⓒ정혜영 기자
    ▲ 4월 10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현장에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땅꺼짐으로 진입을 통제합니다. 우회하세요'라는 주의문이 붙어 있다. ⓒ정혜영 기자
    ◆ 영국·일본, '3D 땅 속 지질도' 80년대부터 활용

    선진국 대도시들은 1980년대부터 3차원(3D) 땅 속 지질도를 만들어 토목공사에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런던을 포함한 5개 도시의 3D 땅 속 지질공학지도가 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선 증기기관차 연료인 석탄을 캐기 위해 땅 속 곳곳에 석탄 동굴이 생겼다. 이후 1980년대부터 도시 지표면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영국은 대도시마다 땅 속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지표면에서 어느 곳에는 싱크홀 위험이 있고, 어떤 지역은 안전하다는 지도를 완성했다.

    지진이 많은 일본도 싱크홀을 예방하기 위해 3D 지질도를 적극 활용한다. 일본 고도 성장기인 1960년대 도시를 중심으로 지하 개발이 시작됐다. 그로부터 20~30년 이후 지하 시설물이 무너지고 싱크홀이 자주 나타났다.

    일본 정부기관인 국토교통성은 지하 암반 조사를 통해 3D 지질도로 시각화한다. 이를 바탕으로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은 지점을 예측한다. 일부 지자체는 지질 데이터와 지하 인프라 상태를 결합한 AI 기반 위험 예측 시스템을 개발해 도시계획과 민간에서 활용되도록 한다.
  • ▲ 서울시 지질도와 음영 기복도(지형의 높낮이를 보여주는 그림). 2024년 8월 싱크홀이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지역과 지난 3월 24일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한 강동구 명일동은 모두 변형에 취약한 변성암 지질로 나타나 있다. ⓒ이수곤 교수 제공
    ▲ 서울시 지질도와 음영 기복도(지형의 높낮이를 보여주는 그림). 2024년 8월 싱크홀이 발생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지역과 지난 3월 24일 대규모 싱크홀이 발생한 강동구 명일동은 모두 변형에 취약한 변성암 지질로 나타나 있다. ⓒ이수곤 교수 제공
    ◆ "3D 땅 속 지질도 만들어 설계·시공에 활용해야"

    전문가들은 '3D 땅 속 지질도'를 만들어 기초 공사에 반영하면 싱크홀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들에게 이런 자료를 공유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이 교수는 "서울시는 땅 속을 뚫은 시추 자료를 통한 평면 지질도를 갖고 있다"며 "터널 공사를 설계할 때 약 100m 간격으로 시추 조사를 하기 때문에 그 간격 사이의 지질 상태는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평면 지질도는 싱크홀 취약 지역을 알기 어려워 지질 상태를 3D 데이터화해 시·주민·시공사가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형 싱크홀로 30대 남성이 숨진 서울 강동구 명일동 일대는 지질이 약하고 복잡한 변성암 단층 파쇄대가 넓게 분포돼 있다. 지하철 터널 공사 도중 붕괴 사고 위험이 크다. 

    따라서 조사·설계·시공 단계에서 이런 특징을 충분히 따져야 한다. 서울에는 변성암(서울 면적의 64%)이 화강암(36%)보다 더 많이 분포해 있다. 특히 연희동·명일동 싱크홀은 변성암 땅에서 지하철 터널 공사가 진행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땅 꺼짐은 지질 상태를 통해 예측 가능하다"며 "AI 기술을 통해 시민들에게 지반침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 3월 24일 발생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 인근에서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정혜영 기자
    ▲ 3월 24일 발생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 현장 인근에서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정혜영 기자
    ◆ "토목·지질 칸막이 깨고, 서울시 직속 지질 공무원 지원해야"

    선진국들은 일찍이 대학이 나서서 토목·지질 융합 과정을 개설해 전문가를 양성했다. 도시개발을 할 때 두 학문을 접목한 전문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학과별로 폐쇄성이 짙다. 융합은커녕 학문 간 소통이 턱없이 부족하다. 

    칸을 나누기보다 지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토목 공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교수는 "국내 대학의 학문 칸막이는 제대로 된 융복합 전문가 양성을 어렵게 한다"며 "변성암 단층 파쇄대는 토목 전문가들이 육안으로는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제라도 지질 기술자와 토목 기술자들을 재교육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지질 조사를 소홀히 하는 관행이 싱크홀로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지하 개발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시 직속 지질 공무원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연구 조직이 필요하다"고 했다.

    주민과 지자체가 실시간으로 협력하는 재난 컨트롤타워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 교수는 "땅 꺼짐 전조증상이 보이면 시민들이 신고를 하는데 지자체는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는 컨트롤타워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연희동·명일동 싱크홀의 경우 사전에 전조증상이 구청에 신고됐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아무리 대비해도 재난 사고는 터질 수 있기에 지자체와 주민이 24시간 참여하는 재난 대응 시스템을 구성한다면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싱크홀 골든타임'을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