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 운동권은 위선 덩어리 … 북한 민주화 입 다물고, 이승만·박정희·광주사태·친일파 타령만

이종권 전 중앙대학교 철학과 교수가 제자들에게 보내는 연작 서신을 연재한다. 70년대 80년대 강단에 섰던 대다수 교수들이 기본적으로 겪었던 학생들과의 갈등과 고민을 다루고 있다. 

학생들, 특히 이른바《민주화 운동권》학생들은 자신들의 투쟁에 교수들의 동참을 끊임 없이 요구했다. 그들에 동조한 교수들은 1987년 6월 26일 가두시위가 격화되던 와중에《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를 결성해 운동권과 보조를 맞췄다. 이런 움직임에 가담하지 않는 교수들은 이른바《어용교수》라 불리며 따돌림과 박해를 받았다. 

민교협 이 생기기 전에도 학생들은 자신들의 이념·철학과 다른 노선을 가진 교수들을《어용교수》라며 수강거부를 하거나, 심지어 교수연구실에 팻말을 달고 못을 박아 폐쇄하는 만행과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교수들이 이런 봉변을 당했다. 학생들과의 이런 갈등은 특히 인문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겐  모두가 겪어야 할 홍역과도 같은 시련이었다.

이 연재는 희수(喜壽)에 달한 필자가 그런 시련 속에 제자들과 가졌던 치열한 논쟁을 회고하며 쓰는 마지막 강의에 다름 아니다. 대한민국의 탄생·성장·발전·미래에 대한 중요한 의제(아젠다)가 담겨 있다. 2030 청년들에게도 좋은 논점과 관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종권 교수는 서울공대 항공학과 졸업후 다시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가 철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뒤 중앙대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했다. 대표적 저-역서로는《과학문명사》《수리철학》《현대철학의 쟁점은 무엇인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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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의 독선의 하나는《지금까지의 한국의 역사는 모두 거짓과 위선의 역사이며 자신들만이 진실된 역사를 만들어갈 능력과 자격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한 믿음 때문에 끊임없이 친일파를 공격한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독립운동가들 본인은 물론 후손들도 어렵게 살았고, 살고 있는데 그들이 말한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는 것에 분개한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과거의 친일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광주사태의 주역이었던 인사들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호의호식하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처럼 친일파에게 치를 떠는 운동권이 왜 광주사태의 주역들은 잘 살도록 내버려 두었는가? 

광주사태의 주역들은 당시 소급법까지 만들어 단죄하는 바람에 실형을 선고 받고 감옥에 들어간 바 있다. 

그런데 소급법을 만들어 그들을 단죄한 대통령 은 막상 자신의 재임 중에 그들을 석방하고 싶어 했다.

이때 나는 자네와 같은 운동권들이 주저 없이 그들의 석방에 반대하는 격렬한 운동, 아니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그 당시 그들의 희망이었던 김대중 도 반대운동을 벌일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을 꿈꾸던 김대중 은 엄청난 비자금 의혹에 휘말렸으며, 따라서 대통령의 꿈이 무산될 위기 에 처했다. 

그렇지만 그때 검찰총장은《김대중에 대한 수사는 호남의 민란을 야기할 것이라며 수사를 하지 말 것을 대통령에게 권고》했다고 한다.

여하간 정치란 그런 것이며 걸어 다니는 양심을 자처했던 김대중 이라도 정치를 하는 한 돈에 대한 욕심은 가질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김대중 의 수사에 대해서는 제기되었던 호남에서의 민란 가능성에 대한 우려 가 광주사태 주역들의 석방에 대해서는 제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운동권의 봉기와 호남인들에 의한 민란 가능성을 들어 광주사태 주역들의 석방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으며, 실제로 그들이 석방되었을 때 운동권이 봉기하거나 김대중 이 비난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김대중 은 오히려 화해를 들먹이며 석방에 찬성했다. 

그 이유가 김대중 도 후보로 나선 차기 대통령 선거에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네들이 그처럼 미워하는 친일파를 이승만이 단죄하지 않은 것은 사실 그들이 국가 경영에 필요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일 투쟁에는 투철한 투쟁 의지가 필요하다고 해도 국가 경영에는 실용적인 지식의 소유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한 지식은 독립투사가 아닌 일제 하의 고등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이승만은 국가 경영에는 투쟁 의지가 아닌 실용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평생토록 일본을 극도로 미워했지만 일제 치하에서 고등교육을 배우고 각종 기관에서 실무경험을 쌓은 전문가들을 친일파로 몰아 배제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지만 김일성 은 자신이 만주에서 온갖 고초를 겪으며 투쟁했다고 선전했던 연장선상에서 국내에서 전문 지식이나 쌓은 전문인들을 미워하고 대거 추방했다. 

그러므로 김일성 은 일반 백성들을 동원하는 식의 경제개발만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박정희가 정치를 안정시키고 뒤늦게 일제 식민지 시절에 교육을 받은 각종 전문가, 그러니까 김일성 이 보기에 친일파들을 동원하여 경제 개발에 착수하자, 북한의 경제는 얼마 가지 않아 한국에 뒤처졌다.

여하간 이승만이 이른바 친일파를 국가기관에 등용한 것은 국가 경영을 위한 실용적인 이유였으며, 따라서 그들을 등용했다고 해서 이승만이 추가로 권력이나 재물을 얻을 일도 없었다.

그러나 운동권과 김대중 은 달랐다. 

광주사태의 주역들이 만기도 채우지 않고 석방된 것은 형식적으로는 당시 그들을 풀어주고 싶어한 대통령에 의한 것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운동권과 김대중, 그리고 호남인에 의한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만일 광주사태의 주역들이 석방되는 즉시 김대중 에 대한 수사를 벌이는 경우 호남에서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더라면, 아마도 당시 대통령은 그들을 풀어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운동권들에 있어서는 광주사태의 주역들이 석방되는 일보다는 김대중 이 수사를 받지 않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인데,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임박한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이 대권을 쥐는 일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김대중 이 대권을 잡는 일만 성사된다면, 자네들이 그렇게 미워한 광주사태의 주역들이 석방되어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김대중 은 영남과의 화해까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처사를 두고 행동하는 양심이라고 자부했던 김대중 과 운동권이 권력욕 때문에 민주주의의 대의를 팔아먹은 것이라는 비난 에 대해 그들은 할 말이 있겠는가? 

박정희 대통령은 여하간 근대화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기는 했지만 자신의 독재가 부도덕하다는 것은 인정했으며, 그래서《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운동권과 김대중 의 양심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권력에 대한 욕심 앞에서는 한낱 휴지만도 못한 알량한 것에 불과했다 고 한다면 심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빈말이라도 화해를 위해 광주사태의 주역을 석방하기로 동의했다면, 설사 그들이 대로를 활보하는 것이 보기에 역겹더라도 마음속으로 그들과 화해하고 더 이상 그들을 단죄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현대사에 아마도 한국전쟁 다음으로 아픈 상처를 남긴, 그 때문에 아직도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광주사태 주역들의 죄를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들과 화해하기로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친일파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광주사태의 주역이라면 아직도 입에 거품을 무는가 하면, 여전히 친일파 타령을 하고 있는 자네들 을 보면, 남의 허물을 찾아내어 단죄하는 것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광주사태의 주역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은 자네들과 같은 이른바 양심세력들의 권력욕 때문이었는데, 어쨌거나 화해를 한다면서도 이미 사망한 광주사태의 주역이 묻힐 곳도 찾지 못하게 하는, 한강이 말하는 소년의 마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몰인정한 짓 을 하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생각이 더 들게 되는 것이다.

자네는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생각해서가 아니라 북한이《민주주의를 논할 자격, 대상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운동권이 북한에 대한 민주주의 투쟁을 벌이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말인가? 

자네는 정말로 독재자 박정희는 그런대로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 대상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에 대한 투쟁을 했던 것인가? 

현재 북한을 상대로 민주주의를 규탄하는 사람들은 운동권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투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머리가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인가? 

북한을 상대로 어쩌면 가망 없는 민주화 투쟁을 벌이는 사람을 두고 머리가 모자란 사람들이라고 조롱하면서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헌신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정성을 믿어야 하는가?

북한은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면, 민주주의에 충실한 운동권으로서는 어떤 상대도 하지 말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많이 북한을 상대하는 것은 운동권 이다. 

예를 들어 임종석 은 북한에 저작권료를 간절히 주고자 하면서도 북한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임종석 을 비롯해서 북한과 접촉하는 운동권들의 태도가 북한을 민주주의는 논할 자격,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취할 태도인가?

민주주의에 자신이 영혼을 건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 임종석 을 비롯한 운동권이 북한을 아예 접촉도 하지 않았으면 몰라도, 접촉했다면 아무리 상대방이 듣기 거북해 해도 자신들이 북한의 민주화를 바란다는 언급 정도는 적어도 한번은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그들은 아마도 앞으로도 영원히 못할 것 같은데, 그들의 그러한 행동은 그들이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고 있고, 박정희에 대한 독재타도 운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보다는 권력을 얻기 위한 전략에 불과했다는 가설 이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운동권이 위선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들의 치명적 잘못조차 둔사(遁辭)로 가리고 상대방의 잘못과 도덕적 흠만을 캐내 물고 늘어지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