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2023년 9호선 용역 보고서 작성전문가, '지하수 평가' 부실 의혹 제기"사고 인근 지점 지하수 유입량 낮게 측정"싱크홀 방지법, 지하수 영향 평가토록 규정
  • ▲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매몰됐던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달 25일 오전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발생한 대형 땅꺼짐(싱크홀) 사고로 매몰됐던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지난달 25일 오전 관계자들이 현장을 살피고 있다. ⓒ정상윤 기자
    30대 오토바이 운전자의 목숨을 앗아간 강동구 싱크홀 사고가 '예견된 인재(人災)'라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앞서 2014년 발생한 석촌 지하차도 대형 싱크홀 사고를 계기로 2016년 '싱크홀 방지법'이 제정됐음에도 이 법이 규정하고 있는 지하안전평가의 일부 내용이 부실하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지하철 터널 공사는 지하수 유출이 불가피하기에 싱크홀 사고를 막으려면 사전에 지하수 유출량을 파악하는 게 중요한데, 법에 명시된 지하안전평가 항목 가운데 '지하수 변화에 의한 영향'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서울시는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안다는 입장을 밝혔다.

    2일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서울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건설공사 지하 안전영향평가 용역' 보고서에는 '굴착 단계별 지하수 유입량 검토'가 담겨 있다.
  • ▲ '서울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건설공사 지하 안전영향평가 용역' 보고서 갈무리
    ▲ '서울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건설공사 지하 안전영향평가 용역' 보고서 갈무리
    이 보고서는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에 따른 지반 침하 위험성을 점검하기 위해 서울시가 2021년 발주해 2023년 완성된 보고서다. 보고서 중반부를 보면 사고 지점 인근인 '939 정거장' 구간의 지하수 유입량에 대한 내용이 등장한다.

    보고서에는 "939 정거장 구간에 대한 공사 중 지하수 유입량은 67.52㎥/일로 예측됐으며, 굴착 완료 후에는 지하수 유입량이 급격히 감소해 안정화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기술돼 있다.

    해당 수치(67.52㎥/일)는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토목공학과 교수에 의하면 "굉장히 낮게 측정된 수치"다.

    구간별 지하수 유입량 변화 그래프를 봐도 빨간색으로 표시된 939 정거장은 다른 구간(본선1·2구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하수 유입량 변화 폭이 좁은 것으로 나타난다.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가 이미 진행됐던 사고 현장 인근에서는 이전부터 지하수 유출량이 많아 지하수위가 저하된 상태였던 만큼 지하수 흐름에 대한 사전 점검 및 평가가 더욱 꼼꼼하게 이뤄졌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 교수는 지난달 28일 서울시 싱크홀 간담회 및 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하안전평가 보고서는 제대로 작성된 게 거의 없다고 본다"며 "특히 지하수 평가는 통상적으로 잘 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공사장으로 지하수가 유입되면 인근 땅은 흔들리고 변형될 수밖에 없는데도 지하수 측정 및 평가와 대책 마련은 미흡했다"며 "해당 보고서에 '지하수 흐름장 해석'도 빠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하수가 흐르는 방향을 알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이호 한국지하안전협회 회장은 "정부는 지하안전법 이행 여부를 5년 주기로 강화하고 있다"며 "지하 공사 현장 인근에서 관측공을 만들어 공사 중에도 지하수위를 측정하고 점검하도록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 ▲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현장에 경찰차 여러 대가 배치돼 있다. ⓒ정혜영 기자
    ▲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동구 명일동 대형 싱크홀 사고 현장에 경찰차 여러 대가 배치돼 있다. ⓒ정혜영 기자
    일명 싱크홀 방지법이라 불리는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은 지난 2016년 국회에서 제정됐다. 10m 이상 터파기를 할 때 사전에 지하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사후에도 영향조사를 의무화하는 게 골자다. 

    지하안전법 14조(지하안전평가의 실시)에 따르면 지하 굴착공사를 수반하는 사업을 하려는 지하개발사업자는 지하안전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평가항목은 ▲지반 및 지질 현황 ▲지하수 변화에 의한 영향 ▲지반 안정성 등 3가지로 나뉜다. 이중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의 소지는 두 번째 항목에 해당한다. 

    나아가 법 제정뿐 아니라 법 집행 또한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교수는 "싱크홀 사고가 추후 재판에 넘겨지면 법원은 지하안전평가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기준으로 보고서 부실 작성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하안전평가 보고서가 부실 작성됐다는 법원 판단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인천 싱크홀 사고 당시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사망했다. 박 교수에 의하면 당시 사고는 시공사가 원인이라는 여론이 형성됐지만 결국 법원에선 무죄가 선고됐다고 한다. 이어 2014년 발생한 석촌 지하차도 싱크홀 사고도 재판에 넘겨졌으나 무죄가 선고돼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지하수 평가 보고서는 문제 없이 작성된 걸로 안다"는 입장이다.

    한편 국토부는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